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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강제노동’ 합의하자마자 해석 마찰…日물타기 시도?

한일 ‘강제노동’ 합의하자마자 해석 마찰…日물타기 시도?

기사승인 2015. 07. 0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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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ced to work' 해석차…기시다 "강제노동 아냐" 논란
세계유산 합의 모멘텀에 찬물…정부간 확전은 자제할듯
백제유적 세계유산등재
4일 독일 본에서 세계문화유산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이날 백제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가 최종 결정되고 있다. /사진=충남도 제공
일제침략기 조선인 강제노동 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문제가 일본의 ‘강제노동 사실 인정’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이에 대한 한·일 양국의 해석이 엇갈리면서 또다시 갈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6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전날 독일 본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등재가 결정된 직후 도쿄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토 구니(佐藤地) 주유네스코 대사의 정부 성명이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앞서 사토 대사는 당시 성명을 영어로 읽으며 “1940년대 몇몇 시설에서 많은 한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끌려와 가혹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강요받았다(forced to work)”고 말했다.

여기에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forced to work’가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시다 외무상이 명확히 했다고 평가했다.

◇ “forced to work”…한국 ‘강제노동’ vs 일본 ‘일하게 됐다’

한국은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을 강제노동으로 해석한 반면 일본은 일어판 번역문에서 수동형인 ‘일하게 됐다(はたらかされた)’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했다. 즉 ‘forced’에 담긴 강제성을 충분히 반영한 해석으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우리 정부는 세계유산회의 한국입장 표명기회에 ‘강제노동’의 의미를 명확히 담은 ‘forced labour’라는 표현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한·일간 절충에 따라 해당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인데 합의 직후 기시다 외무상의 강제노동 부정 발언으로 뒷통수를 맞은 셈이다.

특히 일본 정부의 이 같은 가번역은 이날 아사히·교도통신·도쿄·마이니치·니혼게이자이 등 여러 신문에 인용됐다. 다만 요미우리신문은 정부 가번역본을 이용하지 않고 ‘forced to work’를 ‘노동을 강요당했다’로 해석한 기사를 실었다.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적인 조약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는 식민지 사람들에 대한 강제노동을 법적으로 ‘자국민 징용’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이는 일본이 한국 측 표현인 ‘강제노동 피해자’ 대신 일본 국민에도 해당하는 ‘징용공’이라고 표현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 일본 ‘강제노동’ 물타기, 국내 정치용 의도

일본 정부가 ‘강제성’에 물을 탄 번역본을 만든 것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해온 조선인 강제노동 문제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수용한 듯한 인상을 자국민에게 주지 않기 위한 ‘국내 정치용’인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 신문은 “일본은 징용공의 미지불임금 등은 1965년 국교정상화때 체결한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이라며 “강제노동이라는 단어 사용을 일본이 인정하면 한국이 장래 새로운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음을 (일본정부는)우려했다”고 전했다.

기시다 외무상은 한·일간 청구권 문제에 대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한국 정부가 이번 발언(forced to work 등)을 일·한간 청구권의 맥락에서 이용할 의도는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기시다 외무상의 발언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제회의 현장에서는 강제노동 사실을 인정해놓고, 돌아와서는 이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 것이 결국 일본을 국제사회에서 ‘신뢰할 수 없는 나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만약 청구권 협정으로 이들 문제가 정부 간에서는 완전히 해결됐다고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강제노동 사실이 지워지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일본 정부의 소심함을 드러냈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이미 ‘forced’ 단어 자체에 강제성이 담겨 있다는 것은 영어 초심자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가 영어공부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조롱 섞인 질타도 나온다.

◇ 한·일관계 개선 악재…정부 “영문이 정본, 그 뜻 그대로 이해하면 돼”

한·일간 강제노동의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면서 이는 지난달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살려놓은 관계개선 분위기에도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다만 세계유산 결정문에서 영문 표현이 ‘정본’으로, 문맥상 한 눈에 봐도 강제성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에서는 일본 측 해석에 대해 별다른 외교적 맞대응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양국 정부가 적극적인 관계개선 의지를 가지고 있는 만큼 강제노동 해석을 놓고 전선 확대를 하기 보다는 이 문제를 원만히 마무리 짓고 하반기 한·일 정상회담 개최 등 다각적인 협력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부 당국자는 “세계유산위원회 의장도 영문이 정본이라는 말씀을 했고 우리가 한·일간 협의할 때도 영문으로 협의했다”며 “영문 문안 그대로 보면 된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국제사회가 국제적 기준과 관행에 비추어 어떻게 이해할지다”고 했다.

한 외교 전문가는 “강제노동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되는 영문 결정문에 명확하게 들어간 상황인데 굳이 한국 정부가 논점을 뒤로 돌릴 필요는 없다. 이는 오히려 우리가 일본 측에 영어로 된 내용을 뒤엎을 수 있는, 다른 해석을 유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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