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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씨행단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 이른바 쌍행수가 매년 가을이면 어김없이 노란빛으로 물들어 건재함을 드러낸다. 1987년 큰 수술을 이겨내고 다시 뿌리내리는 등 긴 세월 수차례 시련을 견뎌낸 은행나무이이다.
14일 아산시에 따르면 조선 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650년 넘게 이 땅의 역사를 지켜본 맹사성 고택의 쌍행수는 고불이 직접 심은 것으로 전해지며, 은행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둘러싸인 축대와 단 역시 이때 함께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나무 옆에는 고려 말에 지어졌다는 고택이 자리한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민가 중 가장 오래된 집으로, 여말선초 민가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재상까지 오른 집안의 고택이라고 하기에는 구조와 규모가 놀라울 만큼 소박하다. 담백한 마루와 낮은 처마,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선에서 청백리로 이름 높았던 맹사성의 삶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읽힌다.
고택 뒤편으로 발길을 옮기면 맹사성과 그의 조부 맹유, 부친 맹희도 세 사람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 '세덕사(世德祠)'가 있다.
담장 밖 돌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세종 때 삼정승(황희·맹사성·권진)이 함께 아홉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져 이름 붙은 '구괴정(九槐亭)'에 닿는다. 공간마다 스민 사연을 찬찬히 더듬어도 많은 체력을 요하지 않는 동선이라, 천천히 걸으며 사색을 즐길 수 있다.
특히 가을이면 고택 마당에서 바로 마주 보이는 배방산이 울긋불긋 물든다. 고즈넉한 한옥 처마 아래, 단풍 든 배방산과 은행나무를 바라보는 시간은 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작은 호사다.
고택을 맞은편에 자리한 고불맹사성기념관은 맹사성의 일대기와 유물, 그와 관련된 여러 설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기념관 공원에는 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맹사성 동상도 세워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