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 떠들썩하게 장례 치르고, 사리 줍는다고 재를 뒤적이는가.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 내가 입던 승복 그대로 입혀서, 내가 즐겨 눕던 작은 대나무 침상에 뉘어 그대로 화장해 달라. 나 죽은 다음에 시줏돈 걷어서 거창한 탑 같은 거 세우지 말고 어떤 비본질적인 행위로도 죽은 뒤에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
‘무소유’로 살아온 법정 스님은 이 말 조차도 몹시 부끄러워했다.
17년간 수행했던 조계산 불일암을 떠나 전기, 수도, 전화도 없던 강원도 오두막에 기거할 때도 찻잔 몇 벌, 책 몇 권이 굴러다녀도 ‘너무 많다’며 부담스러워 했던 스님이다.
그런 법정 스님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 땅의 참스승’이었다.
‘무소유’ ‘일기일회’ 등 50여가지 베스트셀러를 내고도 그 인세는 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스님은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이라며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설법했다.
법정 스님과 친한 이계진 의원(방송인)의 일화다. “저는 이제 돈을 많이 법니다. 스님의 말씀을 어기고 사는 거지요”라고 했더니, 스님은 “무소유란 돈을 벌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번 돈을 움켜쥐고 있지 말라는 뜻이지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남을 위해 잘 쓰면 되는 겁니다”고 했다고 한다.
스님을 따르는 ‘맑고 향기롭게’ 신행단체는 실천과제 중 하나로 ‘나누어 주며 삽시다’를 주창해 ‘부자 보다 잘 사는 사람이 돼라’고 설법했던 스님의 뒤를 따라 무소유 삶에 불을 댕기고 있다.
끊임없는 수행을 강조해왔던 스님이기에 가는 뒷모습마저 맑고 향기롭다.
류시화 시인에게 “강원도의 눈 쌓인 산을 보고 싶다”던 스님을 위해 지난 9일엔 전국에 춘설이 내려 스님을 배웅했다.




-m500257_40439.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