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화 논설위원
◇ ‘전곡리’, 새로이 부각된 한반도 구석기 문화유적

(우리문화연구회 회장)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은 50만 년 전 강원도 철원, 평강에서 분출한 현무암이 흘러내려 낮고 평평한 구릉을 형성하고 있고, 그 사이로 흐르는 강은 협곡천이 되어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없는 절묘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생활하기 좋은 지형환경을 이루고 있다. 한탄강 일대는 협곡위로 융기된 지반 위의 퇴적층을 이룬 지형적 특성으로 훼손 없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이는 민족 분단이후 근대적 의미의 급격한 개발이 없어 지표 또한 잘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전곡리 일대가 우리나라 최대 최고의 구석기 유적지로 새롭게 조명된 것은 우연히 한 미군 병사에 의해 역사적 가치가 발견되고, 뒤이어 학계에 보고되면서 세계 고고학 지도가 바뀌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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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탄강변위 구릉에 자리 잡고 있는 유적지. |
◇ 구석기(舊石器)시대란?
인류의 발달과정을 도구제작기술에 의해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로 구분하며 그 중 구석기시대는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유물제작기법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구석기시대로 대개 구분한다. 전기구석기시대는 250만년에서 10만 년 전, 중기는 10만에서 3만5천 년 전, 후기는 3만5천년에서 1만 년 전으로 구분하고 있다. 전기구석기시대에는 큰 주먹크기 정도의 돌에 한 면 혹은 양면을 적당히 떼어내 주먹도끼, 찌르게 등 다용도의 도구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국내유적지로는 연천 전곡리가 대표적이다. 중기구석시대에는 가공기술이 더욱 발달되어 크기도 작아지고, 하나의 용도 즉, 긁게 뚫게 등으로 전문화되어갔다. 후기에는 크기가 더욱 작아지고 모양도 다듬어진 유적지, 공주 석장리의 위층, 굴포리유적 등이 구석기문화의 변천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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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지내에 조성되어 있는 구석기 사람들의 생활모습. |
◇ 선사유적 발굴 이야기, 주한 미군 그렉보웬(Greg Bowen)이 처음 발견
전곡리 선사유적지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그렉 보웬(Greg Bowen)이라는 한 미 공군 하사관이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 고고학과 3학년에 재학 중 입대하여 동두천 헬리콥터 기상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중, 휴일을 맞아 영내클럽에서 노래를 하고 있던 한 여성과 한탄강가로 산책을 나오게 되었다. 산책 중에 우연히 주먹보다 조금 더 큰 돌맹이 몇 개를 발견하게 된다. 흔히 강가에 굴러다닐 것 같은 돌맹이 몇 개(주먹 도끼)가 30만년동안 잠속에 빠져 있던 우리나라 구석기 유물을 세상에 내어놓게 된 서막이었던 것이다. 보웬은 자세한 보고문과 사진을 찍어 프랑스 보르도 대학의 프랑소아 보르드 교수에게 편지를 보냈다. 보르드교수는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이런 돌이 발견되었다면 주저 없이 아슐리안의 석기라고 부를 수 있겠다고 하면서 한국의 서울대학교를 소개하기에 이르게 된다.
4월 중순 휴가를 받은 보웬은 서울대학교를 찾게 되었고, 마침 다른 지역에서 발굴을 하고 있던 김원룡교수의 발굴현장까지 가게 되었다. 유물을 보게 된 김원룡교수는 너무나도 흥분이 되어 한시라도 빨리 현장에 가보고 싶어 단걸음에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후에 발굴이 시작 된 것은 보웬이 미국으로 돌아 간지 넉 달이 지난 다음해 79년 3월이었다. 고고학자로써의 김원룡교수는 전곡리 선사유적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은 그의 사후 유언에 따라 유골은 이곳 한탄강에 뿌려짐으로서 미루어 짐작이 간다. 보웬은 아리조나대학에서 고고학석사를 취득한 후 발굴분야에서 계속 근무하였다고 하며 그 때 사귄 그 한국여인과도 결혼하여 전곡리 선사유적지 축제 때는 동반방문도 하였다고 하는데, 그 날의 감동이 어떠하였을 런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 2005년 5월 방문한 보웬과 그의 사인(왼쪽), 현재 발굴중인 유적지의 모습(오른쪽). |
◇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프랑스의 쌩 따슐(Saint Acheul)유적에서 처음 발견된 석기로서 아프리카 유럽지역에서는 흔히 보이는 전기 구석기시대의 석기류이다. 아슐리안형 석기류는 전면을 정밀하게 가공하여 날이 거의 직선이고 좌우대칭형인 반면에 동아시아에서 출토되는 석기류는 거칠게 다듬은 주먹도끼들이 대부분이다. 당시만해도 고고학에서는 모비우스의 이론 즉 유럽. 아프리카에서는 아슐리안 석기문화, 동아시아에서는 찍게 문화가 존재했다는 학문적 가설이 지배적이었다.
| ▲ 주먹도끼 ▲ 찍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