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Advertisements

극동그룹, 증권사로 재벌 되고 증권으로 붕괴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767445

글자크기

닫기

윤광원 기자

승인 : 2013. 02. 13. 16:33

Advertisements

Advertisements

* 윤광원의 머니임팩트(제90회) - 기업구조조정, 망한 재벌이 남긴 것(1)
과거 극동그룹의 본거지였던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 지금은 웅진그룹의 보금자리다.
"친구 따라 강남 간 사람 치고 성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기업의 핵심역량이 없는 채 자금만 가지고 진출한 기업도 그렇고, 호황이라는 산업에 뒤늦게 뛰어들어 대규모 설비확장에 나섰다가 IMF환란 때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힌 대기업들 대부분이 이런 범주에 속한다. 면면을 살펴보면, 더더욱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명동 사채시장의 산 증인 최용근씨는 《명동30년, 금융의 격랑을 헤치며》에서 지난 1997~1998년 사이 부도 혹은 워크아웃 기업의 현금흐름 악화와 부실화과정을 6단계로 분석한다.

1단계는 양호한 현금흐름의 우량기업, 2단계는 안정적 현금흐름의 정상기업, 3단계가 현금흐름이 악화(감소)중인 관찰대상기업, 4단계로 연금흐름이 이미 악화된 요주의기업, 5단계는 현금흐름 악화가 심화된 경계기업이고, 마지막 6단계의 경우 지급불능 및 도산기업.

1998년 워크아웃된 갑을은 순이자비용이 현금흐름보다 큰 5단계 경계기업이고, 갑을방적 역시 마찬가지다.

1998년 워크아웃된 강원산업은 현금흐름이 순이자비용과 배당금의 합계액보다 많은 4단계 요주의기업이며, 1998년 워크아웃 기업인 고합도 5단계, 19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아자동차는 4단계, 부도처리된 기아특수강은 5단계다.

1997년 워크아웃된 남선알미늄, 법정관리가 개시된 대농, 1998년 워크아웃 기업인 대구백화점과 동아건설 등도 모두 5단계 경계기업들.

반면 1998년 워크아웃을 당한 동방과 동양물산, 신우 및 아남반도체는 현금흐름이 순이자비용과 배당금은 물론 유동성장기차입금 상환액을 합친 금액보다도 많은, 2단계 정상기업이었다. IMF 경제위기에 휩쓸려 억울하게 흑자 도산한 것이다.

1998년 워크아웃된 맥슨전자와 벽산 및 벽산건설, 부도가 난 세양선박과 삼미는 5단계였고, 삼미와 같이 부도를 맞은 삼미특수강은 4단계 요주의기업이었다.

또 1997년 화의를 신청한 쌍방울과 아시아자동차, 1998년 워크아웃된 기업인 아남전자와 우방, 영창악기, 충남방적, 피어리스, 한국컴퓨터, 화성산업, 세풍, 신원 및 진도, 1997년 화의를 신청한 진로종합식품, 1998년 법정관리 처리된 청구 등도 모두 5단계 경계기업들.

아울러 1997년 화의를 신청한 진로, 1998년 워크아웃 기업인 한창제지는 4단계 요주의였다.

"기업들이 처음에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자금시장에서 금융거래가 이루어지다가, 부도 5~6개월 전쯤부터는 서서히 어떤 형태로든 자금운용이나 관리가 허술해짐을 직감으로 알아낼 수가 있다. 금리가 점차적으로 오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극히 비정상적인 루트를 통해서 자금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건을 따지지 않은 채 차입을 위해 어음을 발행하는 것으로, 이는 기업경영상 더욱 위험스런 일이다. 결국 부도의 D-Day가 가까워질수록, 그 정도는 더욱 심화되다가 파국을 맞게된다는 것이다" (위 《명동30년, 금융의 격랑을 헤치며》)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는 기업부도 사태를 더욱 부채질했다. IMF가 고금리와 재정긴축, 금융기관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제고를 강조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IMF체제 출범 첫 달인 1997년 12월에는 전국적으로 하루에 100개 이상의 기업들이 부도를 내고 쓰러졌다. 서울에서만 12월 한달 동안 무려 1226개 업체가 부도, 평소의 2.5배이자 유사이래 최고의 부도율을 기록했다. 서울의 부도업체가 전국의 1/3 정도임을 감안하면, 12월 전국의 부도업체는 무려 3000여 개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한구, 《한국재벌사》)

IMF 위기는 재무구조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준 재벌급 기업들에게 특히 치명적이었다.

경남모직은 1980년대 이후 급성장한 재벌그룹의 하나인 한일그룹의 모기업으로, 'K앙고라텍스'로 명성을 떨쳤던 국내 5위의 모방업체였다. 그러나 경남모직은 매출감소로 1996년 131억원, 1997년 상반기에만 114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그 와중에 IMF 한파가 터지면서, 1997년 12월 9일 부도처리되고 말았다.

김영삼 정권 하에서 혜성같이 등장, 정권과의 유착설이 나돌던 온누리여행사도 파산하는 등, IMF 여파는 전 산업에 파급됐다.

청구그룹이 자금난에 봉착한 것은 블루힐백화점 때문이었다. 건설비용이 다른 백화점의 2배인 2500억 원에 달하는 과잉투자로, 금융비용 부담에 허덕였다. 이런 와중에도 대형할인점 7개를 동시에 오픈하는 등 유통투자를 계속하다가, 유통업계의 과열경쟁을 맞이했다.

설상가상으로 IMF 이후 실세금리 급등과 금융기관들의 대출억제로 자금난에 몰리니, 회생이 어려웠다. 결국 1997년 12월 26일 (주)청구, 청구산업개발 등 주력기업이 화의신청을 하면서 좌초되고 말았다.

극동그룹은 토목기술자인 김용산이 1947년 대영건설을 설립한 것이 시초로, 극동건설로 상호를 변경한 이후 급성장해 창업 10년 만에 '자유당 건설5인조'로 불릴 정도로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로 도약했다.

1985년 국제그룹이 해체되면서 국제종합건설과 동서증권 및 동서경제연구소를 인수한 것이 재벌형성의 결정적 계기였다.

극동건설은 동서증권을 중심으로 동서투자신탁운용, 동서할부금융, 동서팩토링 등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금융그룹으로의 전환을 도모했다. 1995년 총 11개의 계열사가 있었는데 건설관련이 4개 업체, 금융업 6개 업체, 기타 1개 업체일 정도였다.

총자산 3조3976억원에 매출액 9212억원으로 재계랭킹 28위였다.

건설업과 금융업을 양 축으로 하는 극동그룹이 좌초위기에 직면한 것은, 그간 그룹형성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동서증권의 부도 때문이었다.

외환위기에서 비롯된 국내기업들의 신용하락은 급기야 주가폭락으로 연결됐고, 재무구조가 상대적으로 부실한 증권회사들이 부도위기에 직면했는데, 그 와중에 동서증권이 부도처리된 것이다.

극동그룹이 1997년 12월초 전 계열사와 보유부동산을 매각한다는 비상경영대책을 발표하자, 동서증권의 고객예탁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급기야 좌초했던 것이다.

1998년 1월 17일에는 국제종합건설마저 부도처리됐다. 동서증권과 국제종합건설의 부도로 위기에 직면한 극동그룹은 1월 19일 모기업인 극동건설과 국제종합건설, 극동요업, 과천산업개발 등 4개사에 대해 화의를 신청함으로써 침몰하고 말았다.

1990년대 이후 막대한 규모의 단기차입금을 동원, 부실기업을 인수함으로써 재무구조가 열악해진 데다, IMF한파를 맞아 붕괴됐던 것이다.

나산그룹은 1982년 9월 설립된 나산실업을 모태로, 여성의류사업으로 급신장한 그룹이다.

창업자 안병균은 독특한 마케팅 전략, 자기 공장 없이 하청만으로 의류를 생산하는 무공장 시스템으로 사업을 성공시켰고, 오피스텔 등 부동산사업에 대한 감각도 탁월한 인물.

1997년 현재 나산실업, (주)나산, 나산종합건설, 나산유통, 나산클래프, 나산파이낸스, (주)냅스, 나산관광개발, 나산CLC, 나산웰비, 나산플라망스, 새들, 나산산업 등 총 13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종업원 3000명에 1996년 매출액 1조2000억원으로, 재계 순위 50위였다.

하지만 총자산 1조7351억원 중 45.88%가 부동산부문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었다.

안병균은 여유자금이 생기는 대로 부동산에 투자했고, 1990년대 중반부터 기존에 확보한 부동산을 활용해 백화점과 할인점, 오피스텔, 아파트건설 등에 주력했다. 그러나 부동산경기 위축으로 미분양이 속출했고, 주력사업인 의류업도 장기불황으로 판매가 부진했다.

이런 상황에서 IMF가 터지자 견뎌낼 수가 없었다. 1998년 1월 14일자로 (주)나산과 나산실업, 나산종합건설, 나산클레프 및 나산유통 등 5개사가 화의를 신청하면서 좌초됐다.

IMF의 여파는 국내 굴지의 재벌인 동아그룹마저 무너뜨렸다.
 
동아그룹은 해방직후인 1945년 창업한 동아건설을 발판으로, 건설업으로 재벌이 된 대표적인 케이스다. 1997년 말 현재 자본금 2069억원에 매출액 2조9567억원의 동아건설을 비롯, 동아생명보험과 대한통운 등 3개사를 주축으로 총 20개의 계열사에 매출액 6조146억원을 기록한, 국내 재계순위 15위의 재벌이었다.

그러나 1998년 5월 9일 그룹 내 매출순위 6위의 건설기술 용역업체인 동아엔지니어링이 부도처리된 것이 지급보증과 상호출자로 연결된 동아그룹 전체의 붕괴로 이어졌다.

동아그룹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동아건설은 1996년 말 현재 차입금이 3조2200억원, 부채비율이 1556%로 재무구조가 극히 불량한 상태였다. 더욱이 1년 이내에 상환해야 할 단기차입금이 전체의 71.6%에 달했다. 공사 미수금이 매출액의 81%에 달하고, 리비아 대수로공사 미수금만도 5억 달러였다.

IMF체제는 비틀거리던 동아그룹의 숨통을 조였다. 고금리에 따른 금융비용 급증, 매출감소, 은행권 대출축소 및 회수 등이 운명을 재촉했다.

주거래은행인 서울은행 등 은행권에서는 동아그룹의 도산이 막대한 부실채권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 1998년 초 동아그룹에 2차에 걸쳐 총 3600억원의 협조융자를 해 줬으나, 이중 2200억 원이 제2금융권의 대출상환에 투입돼 재무구조 개선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마침내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은 1998년 5월 15일 동아그룹의 소유 및 경영을 포기한다고 선언, 50년 역사의 동아그룹은 무너지고 말았다.

거평그룹은 1979년 주택건설업체인 금성주택에서 출발, M&A를 통해 성장한 그룹이다.

1991년 대동화학에 이어 1994년 대한중석을 인수하면서 거평그룹은 재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어 1994년 라이프유통, 1995년 한국시그네틱스와 포스코켐 및 정우석탄화학, 1996년에는 강남상호신용금고와 새한종합금융 및 ATE인터내셔널, 1997년에는 태평양패션을 각각 인수하면서 재계랭킹 30위권 이내에 진입했다.

특히 IMF체제 하에서도 1998년 3월 한남투자증권을 인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차입에 의한 무리한 사업확장이 IMF 관리체제 하에서 무사할 리 없었다. 극도의 경기위축, 은행권의 대출축소 및 회수, 고금리 등은 거평그룹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부도위기에 처한 거평그룹은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선택했다. 1998년 5월 12일 총 19개 계열사 중 거평시그네틱스, 거평제철화학, 거평화학, 한남투자증권만 남기고 나머지 15개 사는 부도처리한다는 방침이 발표됐다.

이처럼 1997년 1월 한보그룹이 도산한 이래 1년여만에 총 15개 재벌들이 무너졌다. 60대 기업집단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그룹들이 단 1년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IMF관리체제 이후 도산한 재벌들은 1980~1990년대에 공격적인 경영을 통해 급속히 재벌로 도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를 맹신했던 이들은 짧은 기간 동안에 순환출자, 상호지급보증을 통해 주로 제2금융권 등의 단기성 자금을 동원, 다각화하는 한편 계열사들 간에 부당 내부거래를 통해 덩치를 키웠던 것이다. 따라서 재무구조 악화는 불문가지의 사실이었는데, 예기치 못한 IMF체제에 조우하여 더 이상 견딜 여력이 없었다" (위 《한국재벌사》)

윤광원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