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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딛고 일어선 위대한 음악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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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관 기자

승인 : 2013. 04. 15.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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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관의 클래식산책](90)하스킬과 크바스토프의 삶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와 불행을 딛고 명성을 떨친 위대한 연주자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곱추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

20세기 대표 '모차르트 전문가'로 이름 높았던 여성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1895~1960, 사진)의 생애는 불행으로 점철된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모차르트가 5살때 처음으로 소곡을 작곡해 천재성을 증명했다면 그는 6살때 처음 들은 모차르트 소나타를 악보도 보지 않고 그대로 쳐 냄으로써 천재성을 입증했다고 전해집니다. 

른바 '절대음감'의 소유자였죠.

그러나 1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연이은 불행이 그를 덮쳤습니다.

루마니아 태생인 그는 2차례의 세계전쟁을 여성의 몸으로 직접 겪었습니다. 특히 유태인이었던 까닭에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기나긴 도피생활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불행은 그가 다름아닌 '곱추'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불과 18세의 나이에 '세포 경화증'이라는 당시에는 병명조차 생소한 병을 앓았습니다. 

4년간의 투병 후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 청춘, 사랑 등은 모두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클라라 하스킬의 젊은 시절 모습
긴 투병으로 머리카락은 윤기를 잃었고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등은 어느새 굽어버렸던 것이죠.

그러나 가혹한 질병과 전쟁의 고통조차 그에게서 음악만은 빼앗아가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나이가 들수록 흉하게 변해버린 외모와는 달리 모차르트, 슈만 등의 해석에 정평있는 그의 연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롱한 아름다움이 더해갔습니다.

그의 연주실력에 대해 평론가 쇤베르그의 저서 '위대한 피아니스트'에 등장하는 러시아 피아노계의 대모(大母) 타티아나 니콜라예바의 연주회평을 소개합니다.

'하스킬의 몸은 뒤틀려 있었고, 잿빛 머리카락은 온통 헝클어져 있었다. 마치 마녀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유명한 지휘자 카라얀의 존재조차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건반으로 손을 옮기자 곧 나의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실로 내가 평생 동안 들은 최고의 모차르트 전문가였다. 그녀의 마력은 너무나 강력해 오케스트라의 총주가 다시 울려퍼질 땐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풍부하면서도 자연스런 음이 오케스트라로 전달돼 지휘자마저 마술에 걸려 있었다.'

'그녀 덕택에 연주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음악의 진실'을 접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이것은 내가 평생 동안 경험한 최고의 콘서트가 되었다.'

역시 피아노의 거장인 니콜라예바의 이 글을 통해, 당시 하스킬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또 하스킬은 인격 또한 훌륭해 그를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들은 평생 그를 경외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모든 청중이 갈채를 보내며 연주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직후에도 겸손함과 수줍음으로써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청소부나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청소하는 것 외엔 무엇 하나 몸에 익힌 게 없으니.."

한편 미국의 위대한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도 하스킬의 천재성에 대해 흥미로운 평을 남겨 적어둡니다.

채플린은 "나는 태어나서 진정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세 명 만났다.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처칠이었다. 그러나 가장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두뇌의 소유자는 클라라 하스킬이었다"고 했습니다. 

하스킬의 비범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악가' 토마스 크바스토프

독일 성악가 토마스 크바스토프(1959~,사진)의 키는 불과 1미터34센티에 불과합니다.

양팔도 키에 비해서도 무척 짧고, 손가락도 불과 일곱개로 4개가 왼쪽에, 3개가 오른쪽에 붙어 있습니다. 

이러한 신체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독일 가곡 해석에 있어 세계최고의 권위자 중 한 사람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기형이었던 그는 '피아노를 칠 수 없다'는 이유로 독일 하노버음악원에서 입학마저 거부당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같은 대학 법대에 진학했고, 학교앞 재즈바에서 재즈를 불렀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음악수업에 목말랐던 그는 개인적으로 성악레슨을 받았지만, 거의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악조건들 속에서도 그는 세계최고의 바리톤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불굴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그는 신체적인 결함으로 오페라 무대에 설 기회는 극히 적지만, 리사이틀 무대를 통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음반쪽에서도 이미 메이저레이블을 통한 수십종의 작품들이 이미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공고히하고 있죠.

일례로 지난 2011년 도이치그라마폰에서 그가 녹음한 말러의 가곡 ‘소년의 이상한 뿔피리’는 최우수 성악부문 레코딩으로서 그래미상까지 받았습니다. 앞서 지난 2004년 슈베르트 가곡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한 데 이어 두번째의 영광입니다.

그는 "(정식교육이 어려워) 음악은 혼자서 레코드를 들으면서 숙지했다. 그 무엇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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