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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잘 만든 슬로건’ 백마디가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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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람 기자

승인 : 2013. 05. 0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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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와 통하고 싶다” 정치 브랜딩 전략,
커피 한 잔이 있다. 자연스레 연상되는 것은 동그랗고 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이다. 북극곰을 보면 톡 쏘는 탄산음료가 떠오르고, 비타민 음료를 보면 소녀시대의 상큼한 모습이 생각난다. 

광고는 순간의 이미지를 각인시켜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해당 상품을 인식시킨다. 그 효과는 탁월하다. 지하철 하차역을 알리는 특정 기업의 로고송은 머릿 속에서 광고 말미에 나오는 특유의 리듬감 넘치는 멘트가 떠올라 흥얼거리게 만든다.

사람의 심리는 미묘하다. 의식하지 않았어도 많이 노출된 내용에 친근함을 느끼고 어느 순간부터는 편안함마저 갖는다.

정치는 말과 이미지를 이용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임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복잡·미묘한 사람의 마음을 낚기 위해 광고 카피처럼 팔딱거리는 신선한 멘트로 나의 아이덴티티를 포장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단 한줄. 입안에 착 감기는 자음과 모음의 결합은 내 이름을 대변하는 최상의 상품이 된다. 나를 브랜딩하는 전략, '슬로건'은 동시에 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상이 무엇인지 입증하는 도구이다.

슬로건은 시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정치인의 발명품이다. 슬로건을 살펴보면 그동안 우리 사회가 요구했던 바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18대 대통령선거,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첫 슬로건은 ‘내가 기다려온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이는 자칫 잘못하면 오만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내 꿈이 이뤄지는 대통령’으로 수정했다.

이름의 초성인 ㅂㄱㅎ를 사용해 대통령 이미지로 스마일 표시를 사용했다. 이는 ‘박근혜 국민 행복’의 조합으로 읽히기도 했고, 박근혜 대통령 측은 ‘국민 행복 캠프’로 캠프 이름을 정했다.

국민행복은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가장 강조해 온 부분이다. 하지만 행복을 강조해온 것은 박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7년 대선 당시 정동영 민주당 후보는 ‘가족이 행복한 나라’를 슬로건으로 제시했다.

가족 행복과 국민 행복에는 차이가 있다. 글자와 후보의 차이 때문은 아니다. 두 대선 후보를 바라보는 시대상의 차이이다. 정 후보와 함께 출마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민 성공 시대’를 슬로건으로 내놓았다.

당시 국민들은 정신적인 개인의 행복보다는 물질적 성공을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였던 점이 이 전 대통령의 당선에 한 몫 기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양극화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2012 대선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국민적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에 여야 구분할 것 없이 공통으로 제시한 공약도 경제민주화와 복지 해결이었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선 후보의 공약은 ‘대한민국 진짜 남자’였다. 특전사 출신다운 강인함과 남성다움을 부각시키기 위해 내건 이 슬로건은 오히려 문 전 후보에게 역효과를 가져왔다.

‘남자’를 내세운 탓에 여성 후보인 박 대통령과의 성 대결을 벌이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샀다.

결국 문 전 후보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메인 슬로건만 사용했다. 문 후보 캠프 측은 이에 대해 권력·욕망·집안·학력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다는 후보의 의지가 담겨 있는 슬로건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꿈, 문 전 후보가 사람을 내세웠다면 가장 빅카드로 등장했던 안철수 의원은 ‘변화’를 강조했다.

지난 정권에서 지쳐있던 유권자들로서는 안 의원이야말로 깨끗하고 신선함에 구미가 당기는 새 얼굴이었고, 이러한 분위기는 안철수 현상으로 이어졌다.

안 의원 측은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라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길다. 딱딱하다. 하지만 ‘진심은 소박해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세련되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나름의 무게감이 있듯’ 정직하다는 인상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슬로건인지 카피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기존 정치권과의 차별성을 두는 점도 안 의원의 선거 전략중 하나였을 것이다.

'sense and simplicity'. 커피메이커, 다리미 등 소형 가전으로 유명한 필립스의 경영철학이다. 아해하기 쉽고 단순하게. 필요한 기능만 최대 한도치로 발휘하겠다는 의미로 많은 소비자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대선 슬로건의 역할도 이와 같다. 어렵고 복잡한 정책 설명보다 한 줄 슬로건을 통한 단순 접근법이 가장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달콤한 유혹이 되기에 쉽다.

누구나 최고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일 필요는 없다. 지난 대선 세 후보가 제기한 키워드는 사실 가장 단순하지만 진정성이 넘친다.

화려한 볼거리가 넘쳐나는 우리네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요구되는 시대상은 진실을 말하는 진정성의 가치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의 부재를 채워 나와 타인을 연결시켜주는 무언의 끈, 정치판에서는 이것이 슬로건의 큰 역할이다.
김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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