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요한 밤, 우울한 이 밤에 만나줄 여인 하나 없이…” 취업준비생 김 모씨(27·서울 관악구)는 우연히 듣게 된 노래에 심취해 유명 음악 청취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들은 곡을 검색했다. 김씨가 찾은 곡은 가수 ‘10센치’의 ‘오늘밤에’. 그러나 이 곡은 청소년보호법에 따른 ‘유해매체물’로 지정돼 까다로운 인증을 거쳐야만 들을 수 있었다.
#2. “바보 아냐? 유튜브(Youtube·인터넷 동영상 재생 사이트)로 보면 되잖아!” 중학생 유 모군(15)은 얼마 전 공개된 V모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가 멋지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 피를 흘리는 장면 등 공포스러운 연출이 등장하는 이 뮤직비디오는 청소년보호법에 따른 ‘유해매체물’로 분류돼 있었다. 유군의 친구는 ‘유튜브’를 이용하라고 조언했다. 유군은 유튜브를 통해 V그룹의 뮤직비디오를 마음껏 감상했다.
“도대체 ‘청소년보호법’이 왜 필요하지요?”
청소년들의 유해매체물에 대한 접근을 막기 위해 마련된 ‘청소년보호법’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법이 컨텐츠를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성인들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하는데다, 정작 청소년들은 우회적인 방법으로 유해매체물을 제한없이 이용 가능해 실효성이 없기 때문.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사단법인 ‘오픈넷’은 최근 청소년 유해매체물을 이용하기 위한 조건으로 ‘본인 확인’을 규정한 청소년보호법 및 그 시행령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심판 청구 대상이 된 현행 청소년보호법은 ‘유해매체물’에 대한 청소년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휴대폰 인증이나 범용 공인인증서, 아이핀(i-PIN·인터넷 가상 주민등록번호)을 통한 ‘본인 확인이 필요하도록 했다.
그러나 가요와 뮤직비디오 등 일부 청소년 보호법상 유해매체물로 지정된 컨텐츠 대부분은 해외 사이트인 유튜브 등을 통해 본인 확인을 하지 않아도 제약없이 접할 수 있다.
때문에 청소년들의 유해매체 접근은 제대로 막지 못하는 이 제도로 인해 오히려 합법적인 방법으로 컨텐츠를 접하려는 성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오픈넷을 대리해 심판을 청구한 법무법인 정률의 전종원 변호사는 “청소년들은 본인 확인을 하지 않더라도 우회적인 경로로 충분히 유해매체물에 접근할 수 있다”며 “때문에 이 조항은 실효성은 떨어지는 반면 합법적으로 컨텐츠에 접근하려는 성인들의 알 권리는 크게 침해하고 있어 득보다 실이 큰 제도”라고 말했다.
본인 확인 절차가 컨텐츠를 이용하고자 하는 성인들의 개인정보를 인터넷에 축적시키기 때문에 정보 유출의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프라인에서는 술을 살 때 주민등록증을 제시해도 구입 후 기록이 남지 않지만 본인 확인제도는 온라인에 개인정보를 축적시킨다”며 “개인정보가 ‘서비스 이용’의 조건으로 기능하면서 국민들의 신원정보에 ‘가치’를 부여하고 결국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청소년 개개인의 발달 상황에 따라 매체가 미치는 유해성은 정도가 다르다”며 “일률적인 본인 확인 대신 각 컨텐츠에 대한 필터링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부모들이 각 자녀의 발달 상태에 따라 유해매체물에 대한 지도를 하는 게 청소년의 정서에도 더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청소년 유해매체물과 관련된 정책을 소관하는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청소년의 유해물 접근에 대한 단속과 그에 따른 책임 소재를 개인과 가정에만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청소년은 개개 가정의 자녀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자원인 만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와 기성세대인 성인들이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