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공이 수상 안영에게 까닭을 물었다. 안영은 “정작 왕은 남장여자를 즐기면서 일반 백성에게는 이를 못하게 하고 있다”며 “이것은 마치 양고기를 판다고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 것과 똑같다”고 충언했다.
안영의 말을 들은 영공은 궁 안에서 남장을 금했고, 이후 제나라에서는 남장을 한 여인을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양두구육(羊頭狗肉). 겉과 속이 다를 때, 또 기치와 행동이 다를 때, 우리는 이 표현을 사용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4년하고 하루가 지났다. 23일 봉하마을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추도식이 엄수됐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며 눈물을 흘렸다.
노 전 대통령의 주변엔 사람이 많았다. 모두가 소신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린 그들을 ‘친노’라고 불렀다.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후, 선장을 잃은 친노의 미래는 위태로워보였다. 이들은 봉하에 모였다.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하며, 국민 삶과 직결되는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위해 진보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미완의 연구로 중단하기엔 대통령이 너무도 절박하게 매달린 주제, 대통령이 너무도 원대하게 펼친 거대 담론. 다시어가기로 했다.
(‘진보의 미래’, 서문)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의 고민을 잇겠다는 것, 즉 ‘노무현 정신’을 잇겠다고 약속했다.
봉하에서 노무현 정신을 연구하던 친노는 2011년 ‘혁신과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혁신과 통합’, 노무현 정신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다.
이중에서도 노 전 대통령은 ‘통합’을 제일 가치로 여겼던 것 같다. 통합은 그의 숙명적 정치 과제이기도 했다.
“지난날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에서 정치인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내세워 집단간의 불신과 적대감을 부추겨서 벌인 일치고 그 집단에게 불행을 가져오지 않은 일이 없다”
(2000년 16대 총선 낙선 후, 낙선 소감문)
링컨은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는 성경 구절을 즐겨 인용했다. 내가 “동서간의 지역통합이 없이는 개혁도, 통일도 모두 불가능하다. 통합의 문을 통과해야만 개혁도, 발전도 가능하다”고 한 주장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되길 바란다.
(‘노무현이 만난 링컨’, 서문)
그러나 이 같은 노무현의 통합 정신을 친노에서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구태와 분열’의 상징이 돼버렸다.
‘당내 패권주의’와 19대 총선 계파 공천, 18대 대선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보여준 일방적인 모습, 대선 패배 후 책임공방.
‘노무현 정신’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노무현’ 이름 세글자로 정치적 노획물을 얻기 급급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지난 19일 노 전 대통령의 추모행사가 열린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한 참석자로부터 멱살을 잡혔다. 결국 행사 참석 10여분만에 김 대표와 당 지도부는 자리를 떴다.
김 대표는 이에 앞서 지난 10일 봉하마을을 방문한 자리에서 명계남 노무현재단 상임위원으로부터 욕설을 들었다.
단적이지만 친노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씁쓸한 장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