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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회는 위기다

[칼럼] 기회는 위기다

기사승인 2020. 05.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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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숙명여대 석좌교수. 변호사
나치시대의 독일은 칸트와 야스퍼스의 나라가 아니었다. 괴테와 베토벤의 고향도 아니었다. 히틀러유겐트의 어린아이들이 나치에 반대하는 제 부모를 고발하는가 하면, 숨어있는 유대인을 찾아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던 패륜과 야만의 디스토피아였다.

철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독일인들이 히틀러 따위의 미치광이에게 열광했다는 사실은 인간성이 어디까지 파괴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역사적 실례임에 틀림없다.

바이마르공화국은 당시로서는 가장 근대적인 정치제도를 갖춘 자유국가였다. 그렇지만 막대한 전쟁배상금의 부담과 지속적인 경제공황, 치솟는 실업사태 속에서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15년 만에 막을 내려야했다.

공화국 정부에 실망한 독일국민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제국, 하나의 지도자’를 외치며 등장한 히틀러에게 새로운 기대를 걸었다. 결국 공화국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실세 총리로 지명한다. 히틀러는 바이마르공화국을 굴복시킨 승자로 떠올랐다. 히틀러에게 더 큰 승리의 기회를 안겨준 것은 총리에게 법률제정권을 부여하는 수권법이 의회에서 통과된 사건이다.

히틀러는 의회를 무릎 꿇린 승자가 됐다. 이어서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자 히틀러는 스스로 총통의 자리에 올라 군통수권과 국정 전권을 장악했다. 그는 나치독일을 ‘제3제국’이라고 불렀다. 자신은 제국의 황제라는 뜻인가. 그는 법관들에게 명령했다. “만약 당신이 총통의 자리에 앉아있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를 생각하고 판결하라.”

히틀러는 군대와 입법부에 이어 사법부마저도 굴복시킨 승리자였다. “히틀러는 권력을 훔치지 않았다. 그는 국민에 의해 선출됐고, 그 후 국민을 파멸시켰다. 나치즘은 유럽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프란체스코 교황의 지적이다. 히틀러는 유대자본에 대한 민중의 반감을 이용해 유대인들의 재산을 강탈했고, 독일 내의 반유대주의 정서를 부추기는 선동으로 유대인 말살정책을 밀어붙였다.

포퓰리즘의 선전·선동으로 독일인의 상식과 비판정신을 마비시킨 히틀러는 대중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은 승자였다. 교만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히틀러는 승리의 자만심을 누를 길이 없었을 것이다. 히틀러는 외교·군사 면에서도 눈부신 승리를 거뒀다. 그는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독일에 강제로 합병시킨 뒤, 유럽의 순진한 평화주의자들을 속이고 체결했던 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 영국과의 뮌헨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폴란드를 침공했다.

이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군은 덴마크·노르웨이·네덜란드를 탱크로 유린하고, 이어서 벨기에·프랑스까지 점령했다. 거의 유럽 전역을 군화로 짓밟은 히틀러는 유럽통일을 눈앞에 둔 최종 승자인 듯했다. 히틀러만큼 크나큰 승리의 기회를 누린 정치인은 매우 드물 것이다. 그 유례없는 기회를 파멸의 위기로 바꾼 것은 다름 아닌 히틀러 자신이었다.

소련 정복을 꿈꾼 히틀러는 독·소 불가침조약을 휴지조각처럼 내던지고 소련을 침공했지만, 4년여의 전투 끝에 패하고 말았다. 아울러 미국이 참전하면서 전세는 역전되었고, 전쟁은 결국 독일의 패배로 끝났다. 오만한 승자 히틀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실에서의 승패가 선과 악을, 정의와 불의를 가르는 기준은 아니건만, 한 때의 승리를 선과 정의로 착각하는 승자들은 스스로 절대선의 자리에 올라 반대세력을 악으로 몰아치기 일쑤다. 그 오만이 승리의 기회를 파멸의 위기로 바꾸는 악마의 손길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기회도 위기가 될 수 있다. 정치계만이 아니다. 무슨 일에서든지 승리의 기회를 얻어 개선가를 부르고 있다면, 마땅히 채근담의 교훈을 기억할 일이다. “뜻대로 되었을 때 실의의 슬픔이 생긴다.”(得意時便生失意之悲). 승자의 교만을 경계하는 불멸의 가르침이다. 기회는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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