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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트집

[칼럼]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트집

기사승인 2020. 06. 1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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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흥행은 일대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98년 개봉한 ‘쉬리’가 육백만 관객동원의 기염을 토한 이후, 또 다시 자릿수를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천만관객시대를 연 이 작품의 출현은 영화계에선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배급과 상영을 독과점하는 멀티플렉스시스템이 낳은 기형적인 결과였다는 분석이 따랐다. 당연히 제로섬게임으로 인해 작은 영화들을 올릴 스크린이 없어지는 폐해를 가져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개봉년도 당해 여름, 영화천만관객시대가 열린 것이 불편한 이들이 작은 세미나를 가졌다. 자리를 기획하고 연사로 나선 이는 영화비평계에서 저명한 평론가였다. 평소 존경하던 분이라 특별히 그가 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그는 연단에 올라 약간은 상기된 표정과 제스처를 섞어 천만관객동원이 가져올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열거했다.

그러던 중, 귀에 꽂힌 몇 마디가 필자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연이어 흥행시킨 감독을 언급하며 기본적인 영화문법도 모르는 이라고 성토를 했다. 그러고 나서 몇 개의 장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후 시간을 내어 영화를 다시 보았다. 그의 말대로 극의 하이라이트부분에 영화문법에 어긋나 보이는 부분이 눈에 띠었다.

문제의 장면은 국방군과 인민군이 고지를 두고 혈투를 벌이는 백병전장면이다. 공성전과 같은 전투장면에서 공격하는 측과 수비하는 측의 혼선을 막기 위해, 소위 180도기법이라는 것을 사용하는데, 그게 깨져있었다. 쉽게 설명해, 축구장에서 양쪽 골키퍼를 연결한 선을 가상으로 선을 그어 놓고 한쪽에서만 촬영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렇게 촬영하면 공수의 방향에 시청자들이 혼란을 격지 않게 된다. 영상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이들은 다 아는 가장 기본적인 문법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태극기 휘날리며’의 전투 신(Scene)에서 가상선을 파괴한 연출은 의도적이며, 오히려 창의적 문법파괴를 통해 맥락을 담아내고 있지는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그 전투신은 인민군 선봉에 선 형(장동건 분)과 국방군 소속의 아우(원빈 분)가 벌이는 싸움으로 집약될 수 있다. 그들의 조우를 통해 같이 민족끼리 진흙탕싸움을 벌이는 모양새를 그림으로써 한국전쟁의 비극을 표현했다는 편이 올바른 해석이지 않을까싶다.

사실 그 평론가분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섬세하고 철학적인 평론으로 이름을 날린 분인지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작은 영화들이 설 곳이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현실인식과 걱정이 앞서 무언가 ‘트집’을 잡아야 할 마음이 들지 않았나 싶었다. 모임을 주도하는 기획자이자 연사로서 ‘성토의 장’이란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조금이라도 꺼리는 부분이 보이면 반드시 그것을 꼬집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 같다. 만약 필자가 그 자리에 섰더라도 그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상황이 위중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흔히 어떤 대상을 두고, 같은 이유로 좋아지기도 하고 싫어지기도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남녀의 연정이 대표적이랄 수 있는데,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다. 눈꺼풀이 씌어 멋져보였던 그의 거친 행동은 권태기엔 꼴도 보기 싫은 추태로 보인다. 한없이 귀엽고 예뻐 보이던 그녀의 행동이 거슬러 보이기 시작하면 이미 호르몬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 오래지 싶다.

최근 벌어지는 북한의 태도변화에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부도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고 긴급하게 NSC 상임위를 소집,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 상호호혜주의가 깨진 마당에, 마땅히 상응하는 대응과 만반의 준비를 기해야할 때다. 그러나 언론은 ‘트집을 위한 트집’으로 여론을 호도해선 아니 될 말이다. 북쪽의 트집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긴밀히 파악하고 감정이 배제된 냉철한 판단으로 미래를 위한 준비태세를 해야 할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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