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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듣기의 미학, 우리 사회서 가장 필요한 이유

[기고]듣기의 미학, 우리 사회서 가장 필요한 이유

기사승인 2020. 06.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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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희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물리적으로 듣는다는 의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남의 말을 (물리적으로)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것 같다. ‘빨리빨리’ 문화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인터넷 속도로 인한 인내심의 감소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우발적인 감정만 앞세워 큰 싸움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상대방의 생각과 의사를 전혀 가늠하기 어려운 인터넷 공간에서 무심코 작성한 댓글로 누군가는 상처를 받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며,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아님 말고’ 식으로 넘어가기 일쑤다. 이와 같은 듣기와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는 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법조계도 다를 바 없다.

‘묻는 검사보다 듣는 검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검사로 임관한 것이 벌써 6년 전이고, ‘말 잘하는 변호사보다 (물리적으로) 말을 잘 들어주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변호사로 활동한 지 6개월이 되었다. 사건의 당사자들은 모두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곳이 생각 보다 많지 않다. 경찰서, 검찰청, 법원은 사건 처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당사자들의 사연을 충분히 들어주지 못하고, 변호사들도 바쁜 탓에 법적인 쟁점을 포착하기 위해 의뢰인의 사연을 잠시 듣다가 결국 자신이 궁금한 점을 묻기 시작한다.

듣기와 커뮤티케이션의 부재로 인한 부작용은 실제 사건에서도 흔히 발견되고, 고소·고발의 남발로 이어져 대한민국은 여전히 ‘고소·고발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검사 재직 당시 수사했던 사건 중에는 실제로 범행한 사람이 피의자로 입건된 사람이 아닌 같은 자리에 있었던 다른 일행임이 밝혀진 것이 있었다. 변호사로 대리했던 사건 중에는 당사자의 주장은 전혀 듣지 않은 채 오로지 고발 자료만 갖고 국가기관에서 불이익한 처분을 한 탓에 상대 국민은 불필요한 소송을 하느라 시간적, 정신적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사건도 있었다. 모두 한쪽 말만 듣고 섣불리 판단하거나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탓에 발생한 일들이다. 차이가 있다면 검사는 수사에 필요한 부분을 추궁하고, 변호사는 당사자의 주장을 의미 있는 법률적 주장으로 구성하는 것일 뿐, 양자 모두 듣기에서 비롯되는 것은 똑같다.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타인을 비판하며, 누군가를 고소·고발하는 것은 각자의 권리이다. 다만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들이 쉽게 해결될 수 있음에도 감정만 앞세워 섣불리 결정한 탓에 상대방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를 극복해나가며 세계적으로도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는 지금,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귀 기울이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일지’는 각자 선택하되, ‘듣기’ 만큼은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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