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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칼럼] 대구·경북(TK) 통합론의 정신문화적 가치

[조향래 칼럼] 대구·경북(TK) 통합론의 정신문화적 가치

기사승인 2020. 07. 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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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경북지사·권영진 대구시장 '통합' 한목소리
'화랑·선비·의병·새마을정신' 신청사에 상징물
대구·경북 통합론, 어느때보다 설득력 얻어
여러 난관 돌파 '상생·중흥 행정통합' 달성해야
조향래 논설위원 0611
조향래 논설위원
‘그럭저럭 나이 차서 청송 마평 서씨 문중과 혼인은 하였지만 신행 날을 받았어도 갈 수 없는 딱한 사정. 농 사오라 시댁에서 보내준 돈마저 어느 노름판에 날리셨나? 우리 아배 기다리며 신행 날 늦추다가, 큰 어매 쓰던 헌 농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간장 녹였더니, 오늘에야 알고 보니, 독립군 자금으로 그 많던 천석 재산 다 바쳐도 모자라서...’

이 기막힌 편지글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월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서산 김흥락은 임진왜란 때 관군과 영·호남 의병의 총력을 기울여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순국한 학봉 김성일의 11대 주손이었다. 국운이 기울어가던 19세기, 퇴계학맥의 마지막 봉우리이기도 했던 서산은 퇴계의 도통(道統)과 학봉의 구국정신을 이어받아 안동지역 독립운동의 첫 횃불을 들었다.

안동 의병의 대부로 만인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그도 일제의 강탈과 무례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1896년 6월 12일 새벽에 들어 닥친 일본군은 학봉 종가를 분탕질하고 칠십 노구의 종손을 포박한 채 마당에 무릎을 꿇게 했다. 의병대장인 사촌 아우 김회락을 숨겨줬다는 이유였다. 명망이 태산 같았던 할아버지의 치욕을 생생하게 목격했던 서산의 손자 김용환은 당시 10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이철우 경북지사·권영진 대구시장 ‘통합’ 한목소리

일본군 병사의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우리 할배 살려 주이소”라고 울부짖던 소년은 이날의 충격과 분노를 평생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참담한 현장이 서산의 문도와 집안 후손들이 그토록 강렬하고도 지속적인 항일투쟁을 벌여 나가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김용환은 불구대천의 원수 왜적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날의 작심이 의병전장을 누비게 했고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견디게 했다.

미치광이·파락호라는 손가락질도 감내하게 했다. 그는 만주 독립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종가의 전답 43만㎡(13만평·시가 300억원 상당)를 처분했다. 300년 역사의 종가를 3차례씩이나 팔아 먹기도 했다. 그리고 철저히 노름꾼 행세를 했다. 김용환은 광복 이듬해 평생을 바쳤던 독립운동에 대해 끝내 침묵을 지킨 채 세상을 떠났다. ‘선비의 후손으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 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숨은 공로는 동지들의 독립운동 행적이 발굴되면서 함께 밝혀졌다. 김용환은 1995년 광복절 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외동딸 김후웅 여사가 친정 조카에게 보낸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란 이 편지글은 그렇게 탄생했다. 김 여사의 외아들 서점(70)이 청송항일의병기념관 건립과 의병정신 선양에 그토록 동분서주했던 까닭도 그래서 알만하다.

‘정신문화 가치 공유’ 상생·중흥 행정통합 달성

서점은 정신문화의 재정비를 위해서도 대구·경북(TK)의 통합이 당연하다고 역설한다. 지역의 동질성과 공동체 의식의 분리로는 더 이상의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구시와 경북도의 신청사 정문이나 광장에 ‘화랑·선비·의병·새마을정신’을 상징하는 네 기둥을 세우고 대구·경북의 통합 의지와 남북 통일의 염원을 담은 랜드 마크를 건립하자고 주장한다.

대구·경북 통합론이 어느 때보다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구·경북의 어두운 미래를 타개하기 위해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도 모처럼 통합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구·경북의 상생과 중흥을 위한 행정통합론이 여러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조상 대대로 농축된 정신문화 가치의 공유가 필요하다. 혼이 빠진 외형적 성장과 분화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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