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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강철비2’, 등장인물의 작명(作名)과 파자(破字)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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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강철비2’, 등장인물의 작명(作名)과 파자(破字)놀이

기사승인 2020. 08. 0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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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2 : 정상회담’이 개봉됐다. 1편과 마찬가지로 북한 내부에 쿠데타가 일어난다는 설정엔 공통점이 있으나 속편으로서 연속되는 지점은 없다. 분명 전작과는 별개지만 소망성취로서 염원은 한결같아 보인다.

상영 중인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염두에 두는 부분이 있는데,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다양한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전체 스토리라인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에게 영화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하고 맥락을 관통하는 이슈거리를 제시해야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작용한다. 영화를 보았거나 혹은 볼 예정인 관객들과 짧은글을 통해 공통분모로서 사유의 폭을 공유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곧잘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한국, 북한, 미국의 최고지도자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하는 지도자의 위치란 그 자체로 압박이 되기에 범부에겐 벅찬 자리이다. 간결한 메시지로 말하되 큰 그림을 그려야하는 것이 국가의 리더가 갖춰야 덕목처럼 여겨진다. 때문에 그들의 사적인 일상이나 공적대화 이면의 모습은 늘 궁금증의 대상이 된다. 만약 CCTV로 지도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들을 수 있다면 그들의 일분일초는 딜레마적 상황으로 점철돼 있지 않을까 싶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의 주요캐릭터들이 비틀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비틀어져 있다’는 것은 특정이미지가 특별히 부각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젊지만 패기보다는 없잖아 유약해 보이는 면이 있다. 북한 위원장은 젊다 못해 어려 보인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에 대해 심한 중압감을 받고 있는 캐릭터로 나온다. 한편 미국 대통령은 지적인 면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품위라곤 찾을 수 없는 산도적 같은 이미지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한반도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당사국으로서 현재 각국의 지도자들을 연상케 한다. 이들 세 명의 조합엔 ‘관계의 룰’이 작동한다. 안하무인인 미국 대통령은 아무데서나 방귀를 뀌어대고 악취를 뿜어댄다. 동안(童顔)의 이미지를 감추려고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고 목소리에 힘을 주고 있지만 북한의 젊은 지도자는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로 연신 줄담배를 피어댄다. 그 사이에 중재자로 나선 한국 대통령은 화장실 악취와 매캐한 담배 연기를 안간힘을 써가며 참아낸다. 해학적이지만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한편 영화에서 직접적인 방식으로 소개되는 텍스트가 있는데, 바로 그레이엄 앨리슨의 ‘예정된 전쟁’이다. 앨리슨은 역사적 자취 속에 현재와 같은 패턴을 보이는 국가 간의 권력이동시기에 벌어진 전쟁들의 원인과 그 결과에 주목한다. 그리고 새로운 세기에 전쟁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게 바로 지금보다 ‘더 결속된 경제적 관계와 중개자의 역할’이다.

중국에 대해 보호무역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어 예정된 전쟁을 기필코 치르려는 미국의 입장을 대변이라도 하듯 대통령의 이름은 ‘스무트’이다. 스무트란 이름은 1930년 대공황시기 잘못된 보호무역정책으로 경제난을 더욱 가중시켜 급기야 세계대전을 발발케 한 요소로 꼽는 실패한 보호무역주의 ‘스무트 홀리 관세법’에서 따왔다. 예정된 어리석은 수순을 밟아가는 미국을 풍자한다.

한편 봉쇄로 인한 총체적 경제난국으로 인민들의 의식주가 불안한 극단에 몰려, 정권의 존망을 두고 사생결단을 내야하는 북조선의 젊은 지도자 이름은 ‘조선사’이다. 국가 운명을 걸고 ‘핵 아니면 경제’라는 양자택일 카드를 쥔 불안한 정권의 리더 이름으로 제격이다. 그만큼 그들은 절박하다는 비유다. 그들에게 핵을 내려놓게 할 명분과 실리를 주고 보석보다 갚진 평화를 살 수만 있다면 그만한 게 어디 있을까 싶다.

‘한반도를 경제공동체의 모델로서 재건을 모색’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이름 역시 한경재다. 중개자를 넘어 희망을 그리는 픽션 장르에 걸맞은 작명(作名)이지 않을까싶다. 파자(破字)놀이에 불과한 해석이지만 영화만큼 리뷰 역시 소망성취를 담고자 한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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