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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투 유머펀치] 아파트가 기가 막혀

[아투 유머펀치] 아파트가 기가 막혀

기사승인 2020. 08.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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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투 유머 펀치
소도시에 사는 영감님이 서울의 메리어트 호텔에서 딸을 만날 요량으로 택시를 탔다. 애초에 호텔 이름을 ‘메리야스’로 기억했던 영감님은 그마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난닝구’ 비슷한 속옷 이름이었는데...”라고 말했을 뿐인데, 택시 기사는 정확하게 메리어트 호텔 앞에 차를 세웠다. “어떻게 알았느냐”는 노인장의 질문에 기사는 “어제는 ‘전설의 고향’도 갔는데요”라고 쿡쿡 웃었다.

‘전설의 고향’ 얘기는 더 기가 막힌다. 아들 집에 가려고 서울역에 내린 시골 할머니가 택시를 탔다. 몇 번이고 들은 아파트 이름과 장소가 입에서 뱅뱅 돌기만 했다. 그래서 “‘전설의 고향’ 지나서 ‘니미시벌 아파트’로 가자”고 했는데, 기민한 택시 기사가 목적지에 제대로 내려줬다. 그곳은 다름아닌 ‘예술의 전당’을 지나서 위치한 ‘리젠시빌 아파트’였다.

난삽한 아파트 이름이 다양한 촌극을 빚고 있다. 외국인 조차 고개를 갸우뚱할 아파트 브랜드의 천태만상은 건설사와 입주민의 상술과 허세의 합작품이다. 영어인지 불어인지 스페인어인지 모를 외래어 명칭의 횡행은 영·미권이나 유럽에 유학을 다녀온 학구파들도 이해난망일 따름이다. ‘더샵 디어엘로’ ‘힐스테이트’ ‘센트레빌’ ‘위브더제니스’ ‘보네르카운티’ ‘베르디움’ ‘스위첸’ ‘하이페리온’ ‘웰러스’ ‘리슈빌’....

‘래미안’ ‘솔파크’ ‘푸르지오’ 등 한자어나 우리말과 조합한 것들도 있다. 바야흐로 국적불명 아파트 이름의 춘추전국시대다. 근본도 모를 난해한 외국풍의 이름을 써야 고급 아파트가 된다. 혀가 꼬이는 어려운 이름의 아파트에 사는 입주민이라야 상류층 행세를 한다. 한글 학자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고 했다.

8월부터 아파트 분양권 전매제한 조치가 더 강화되면서 막차를 타기 위한 아파트 분양시장이 후끈 달아 올랐었다. 휘황찬란한 이름의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솟아 오를 것이다. 이런 아파트 천국에 사는 우리 국민의 품격은 올라가고 있을까 내려가고 있을까. 백화제방의 글로벌 아파트 세상, 그래서 이땅의 어른들이 ‘니미시벌 아파트’를 찾아 헤매는 나라,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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