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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꽃보러 갔다 숲에 반했다

[여행] 꽃보러 갔다 숲에 반했다

기사승인 2020. 08. 2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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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태백 두문동재~검룡소 트레킹
여행/ 태백
분주령에서 검룡소 입구로 향하는 길. 태고의 풍경이 이 길에 있다.
꽃 보러 갔다가 숲에 반했다. 얘기는 이렇다. 강원도 태백 금대봉(1418m)에서 대덕산(1307m)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꽃길’로 통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늘 핀다. 산의 민둥한 봉우리 역시 ‘꽃밭’으로 이름났다. 빛깔 고운 여름꽃 구경에 나섰는데 꽃보다 숲에 꽂혔다. 숲은 물기를 잔뜩 머금어 풍성했고 이파리의 녹음도 물이 올랐다. 세상이 바이러스로 어수선하지만 천연한 숲은 무심히도 평온했다.

여행/ 태백
40~50년전 화전민이 일군 밭에 심은 낙엽송이 자라 싱싱한 숲이 됐다.
여행/ 태백
40~50년전 화전민이 일군 밭에 심은 낙엽송이 자라 싱싱한 숲이 됐다.
‘꽃길’ 코스부터 짚어본다. 길은 두문동재(싸리재·1268m)에서 시작한다. 태백과 정선(고한읍)을 잇는 고개다. 여기서부터 금대봉을 에둘러 분주령, 대덕산, 검룡소 입구까지 이어진다. 대덕산 정상에 올랐다가 검룡소 입구까지 가면 4시간 30분쯤 걸린다. 대덕산을 패스하면 약 3시간 거리다. 금대봉 정상이나 검룡소까지 포함하면 1~2시간이 더 추가된다. 사람들은 금대봉이나 대덕산까지 갔다가 두문동재로 돌아오거나 검룡소까지 간 후 (콜)택시를 타고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길은 완만한 내리막이다. 검룡소 입구에서 출발해 두문동재로 거슬러 올라도 된다. 다만 오르막이라 힘이 더 들고 시간도 조금 더 걸린다. 물론 어디서 출발하든 걷고 싶은 만큼 걸으면 된다.

출발점인 두문동재는 집에 틀어박혀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두문불출’과 관련이 깊다. 조선이 개국할 무렵 유학에 조예가 깊었던 고려의 신하들은 두 명의 왕(王)을 모실 수 없다며 개경 두문동에 숨어 살았다. 일부가 두문동재 아래까지 피신해 거주했단다. 지금은 두문동재 아래로 터널이 뚫렸다. 터널 입구에서 옆으로 난 옛길을 타야 두문동재 정상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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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나무 샘.
‘꽃길’ 일대에는 이곳에서만 자생하는 식물이 꽤 된다. 희귀한 종류도 많다. 식생 보호를 위해서 두문동재~대덕산 구간은 탐방예약제가 시행 중이다. 하루에 300명만 걸을 수 있고 예약은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서 해야한다. 이러니 숲도, 길도 훼손이 덜 됐다. 숲이 좋은 이유다.

특히 분주령에서 검룡소 입구까지 구간이 백미다. 분주령에서 대덕산으로 오르는 길과 검룡소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진다. 태백, 정선, 삼척의 상인들은 농산물, 수산물을 짊어지고 이 고개를 분주하게 넘어다녔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분주령이다. 가다 보면 하늘로 쭉 뻗은 낙엽송숲이 나온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화전민들이 이 일대에 밭을 일궜단다. 이 길은 ‘불바래기길’로도 불리는데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려고 피운 불길을 바라보던 곳이란 의미다. 이 밭에 심은 나무가 자라 울창한 숲이 됐다. ‘고목나무 샘’도 만난다. 바위 사이에 박아 놓은 대나무통에서 물이 졸졸 떨어진다. 이 물이 땅 밑으로 스며 흘러 검룡소까지 간단다. 검룡소는 한강 발원지다. 검룡소 입구에 도착할 무렵 길 옆으로 작은 계곡도 나온다. 물이 참 맑다. 사위가 어찌나 고요한지 물 흐르는 소리가 선명하고 또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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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탁 트인 고원들판도 나온다. 고산준봉을 앞에 둔 풍광이 장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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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깔 고운 야생화가 길동무가 된다.
길은 전반적으로 걷는 재미가 있다. 조붓한 오솔길이 등장하고 이마에 살짝 땀이 맺힐 정도의 고갯길도 나온다. 특히 금대봉을 에둘러 지나치면 탁 트인 고갯마루가 느닷없이 튀어 나오는데 어깨를 견준 준봉을 앞에 둔 고원 들판의 풍광이 압권이다. 꽃이 만개할 때는 분위기가 환상적이고 꽃이 없어도 장쾌하다. 바람이 시원한 이곳에선 계절이 무색하다. 이토록 멋진 길은 걷기도 편하다. 두문동재에서 검룡소 입구까지 완만한 내리막이다. 세상사를 게워내 곱씹으며 걷기에는 이런 길이 낫다.

그럼 꽃은 어느 계절이 좋을까. 늦봄에 화려하다. 김상구 태백시 문화관광해설사는 “4월 20일부터 5월 10일쯤”이라고 했다. “8월은 좀 애매한 시기”란다. 여름꽃 보기에 조금 늦었고 가을꽃 보기에는 조금 이르다. 그렇다고 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절정의 시기에 비해 덜하지만 여전히 꽃은 피어있다. 관목 사이에 핀 오렌지색 동자꽃, 노란 마타리 등이 길동무가 된다. 헬기장 주변이나 볕이 잘 드는 개활지에는 더 많다. 길을 걷고 숲을 헤집어 보면 꽃이 성에 차지 않아도 본전 생각이 절대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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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발원지 검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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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룡소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영겁의 시간 바위를 깎았다.
검룡소 입구에서 검룡소까지는 약 20분쯤 걸린다. 검룡소는 한강 발원지다. 동네 우물보다 조금 큰 웅덩이인데 연중 마르지 않고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안내판은 ‘섭씨 9도의 지하수가 하루에 2000톤씩 솟는다’고 설명한다. 검룡소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정선과 영월, 충북 단양, 충주를 거쳐 경기도 양평 양수리(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서울, 인천 강화를 거쳐 서해에 닿는다. 길이가 무려 514km, 물길이 관통하는 도시만 30여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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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룡소 가는 길.
사실 태백에서 시작되는 것은 한강뿐만 아니다. 조선시대 지리서 ‘동국여지승람’이나 ‘택리지’ 등에는 황지(못)가 낙동강의 발원지로 소개된다. 황지는 태백 황지동 복판에 있다. 그래서 태백은 ‘시작’의 도시다. 태백 하면 떠오르는 태백산(1566m)은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진다. 새해, 새출발에 앞서 해돋이를 보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

우리나라 광업의 역사도 태백에서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태백에서 처음 석탄이 발견됐다. 이게 남한 최초의 석탄이다.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에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를 비롯해 40여 곳의 광업소가 태백에 있었단다. 광업도시의 흔적은 이제 당시를 기억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남았다. 장성동의 365세이프타운(한국청소년안전체험관)은 태백여행의 여정에 포함해도 좋을 곳이다.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평화사택 자리에 들어선 국내 최대의 안전체험 테마파크다. ‘안전’을 주제로 20여 가지의 체험을 할 수 있다. 시설과 프로그램이 깜짝 놀랄 수준이다. 특히 라이더형 시뮬레이터와 3차원(3D) 영상을 이용한 산불체험관, 풍수해체험관이 인기다. 짚라인 등 야외 극기 체험활동이 가능한 챌린지월드, 소방관련 체험 할 수 있는 소방안전체험관도 조성돼 있다. 9월 5일까지 임시휴관 중인데 기억했다가 나중에라도 가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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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세이프타운 짚라인.
검룡소를 마주하면 시작이 늘 거창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웅덩이에서 흘러넘친 물이 바위를 타고 흐른다. 영겁의 시간 동안 물줄기를 받아낸 바위는 마치 바구니처럼 둥그스름하게 깎였다. 물은 폭포가 돼 바위 아래로 떨어진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물소리가 참 힘차다. 검룡소까지 가는 길도 예쁘다. 양 옆으로 낙엽송이 도열한 구간도 있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 못지 않은 운치가 있다. 길도 판판하다. 두문동재부터 걸어 내려오기 힘들다면 검룡소만 다녀와도 좋다.

숲이 좋은 두문동~검룡소 구간은 야생화에 관심이 없어도 한 번쯤 걸어볼 만하다. 팔도에 숱한 ‘OO길’을 걸어봤다는 누군가는 “이 길이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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