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 뉴질랜드 성추행 사건, ‘사법절차’ 통해 해결해야 한다

[칼럼] 뉴질랜드 성추행 사건, ‘사법절차’ 통해 해결해야 한다

기사승인 2020. 09. 02. 21:05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박동실 전 주 모로코 대사
외교부 "범죄인 인도 요청하면 협조"
국제적 사법 정의 실현 위해 '범죄인 인도' 등
사법절차 따라 해결...양국관계 세심히 가꾸는 계기
박동실 전 주 모로코 대사 최종
박동실 전 주 모로코 대사
1584년 멘도사 영국 주재 스페인 대사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폐위 모의에 가담했다가 적발됐다. 영국에 억류돼 있던 스코틀랜드의 가톨릭계 메리 여왕을 왕위에 세우기 위함이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저명한 여러 학자들과 멘도사 대사의 처분을 논의했지만 ‘재판관할권 면제’에 따라 영국에서 재판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영국 정부는 재판을 요구하는 여론을 거부하고 멘도사 대사를 추방했다.

한국과 뉴질랜드 역시 뉴질랜드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발생한 한국 외교관 A씨의 성추행 사건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A씨는 지난 2017년 11월 뉴질랜드 근무 시절 현지인 행정 직원 남성을 3차례 성추행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외교부는 2018년 자체 감사를 통해 A씨에 대한 감봉 1개월의 징계를 결정한 뒤 제3국 총영사로 보냈다.

외교부 “범죄인 인도 요청하면 협조”

하지만 뉴질랜드의 외교적 압박은 거셌다. 지난 7월 28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해당 외교관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아던 총리는 한국 정부가 재판관할권 면제를 포기하지 않아 경찰 수사가 진행되지 못하는 데 실망감을 표시했고, 문 대통령은 사실 관계를 확인해 처리하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난 달 1일에도 뉴질랜드 부총리 겸 외교통상부 장관이 방송에 나와 “한국 외교관이 결백하다면 뉴질랜드로 와서 사법절차에 따르면 된다. 외교관의 재판관할권 면제가 이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외교부는 지난 달 17일 A씨를 향해 귀임 발령을 내렸다. 그동안 한국 측은 현재 뉴질랜드 주재로 근무하지 않고 있는 A씨에 대한 재판관할권 면제를 포기할 수 없으며, 뉴질랜드로 돌아가 재판절차에 따르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이젠 뉴질랜드 정부가 형사사법공조나 범죄인인도를 요청하면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두 나라 간에는 신뢰관계가 돈독한 국가들이 맺는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돼 있다. 한국과 뉴질랜드를 포함해 192개 나라가 가입한 ‘외교관계에 관한 빈협약’은 외교관의 주재국에 대한 민사와 형사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파견국이 스스로 재판관할권 면제를 포기할 수는 있다.

두 나라 관계 세심히 가꾸는 계기 삼아야

현재 뉴질랜드에 주재하지 않는 A씨는 뉴질랜드에게 더 이상 한국 외교관이 아니다. 따라서 A씨가 뉴질랜드에서 재판관할권 면제를 누릴 수 없다는 뉴질랜드 측의 주장은 타당하다. 같은 이유로 현실적으로 재판관할권 면제를 포기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도 타당하다. 한국 정부가 한국의 한 국민인 A씨를 국제법적 근거 없이 타국에 송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결백하다면 스스로 돌아와 재판받으라’는 뉴질랜드 측의 주장은 공허하다. 형사재판의 기본원칙은 혐의를 받는 사람이 스스로 무죄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법리상 이유로 범죄 혐의자를 조사조차 할 수 없다면, 범죄 예방과 협력을 통해 국제적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국제사회의 추세에 맞지 않는다. 뉴질랜드 정부가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다고 해서 두 나라의 우호관계가 훼손되지 않는 만큼 해당 제도를 활용해 양국 관계를 더욱 세심히 가꾸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