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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임진강 비경 품은 ‘연강나룻길’

[여행] 임진강 비경 품은 ‘연강나룻길’

기사승인 2020. 10. 0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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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개안마루
연강나룻길 개안마루에서 본 풍경. 부드럽게 휘어지며 흐르는 강줄기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오른쪽에 개안마루 전망대가 보인다.
연강나룻길이 있다. 경기도 연천 군남면과 중면에 걸쳐 조성된 길인데 임진강변의 야트막한 산허리를 에두른다. 호젓한 숲길을 따라가면 눈이 호강할 비경이 나타난다. 경치 좋고 분위기 고상한 길(道)은 그 자체로 근사한 여행지다. 이 길이 ‘딱’ 그렇다. 바이러스가 부담스러울 때는 ‘걷기 여행’이 그나마 괜찮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사위 한갓진 길을 걸으면 속도 편하다.

여행/ 군남댐
산능선전망대에서 본 군남댐. 여기서 휴전선까지 거리가 6km에 불과하다.
연강나룻길은 풍경이 맑다. 이유가 있다. 북한에서 발원한 임진강은 휴전선을 넘어 연천에서 남한 땅과 처음으로 만난다. 연강(漣江)은 임진강의 연천 구간 이름이다. ‘경기도 최북단, 휴전선 아래 첫번째 길’이 여기다. 대체 북한과 얼마나 가까울까. A코스가 시작되는 군남홍수조절지(군남댐)는 휴전선에서 불과 6km 떨어져 있다. 임진강의 약 70%는 북한 땅을 흐른다. 상류에 위치한 북한 황강댐 수문의 개폐가 연천을 포함한 하류 유역에 영향을 끼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 군남댐이다. 올여름 장마 때도 물막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군남댐은 산능선전망대에서 잘 보인다.

코앞이 북한이니 함부로 다니지도 못했단다. 일대는 한국전쟁 이후 60여 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다. 비로소 열린 것이 2016년의 일이다. 사람 손이 덜 탄 만큼 자연은 잘 보존됐다. 길에서 인공의 거부감이 안드는 이유다. 이렇게 천연한 강변에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천연기념물인 재두루미, 흑두루미가 찾아온다. 두루미는 부와 장수의 상징, 접경지역에서는 통일과 평화의 상징이다. 이런 의미를 잘 새기라고 군남댐 옆 강변에 두루미테마파크도 들어섰다. 두루미를 관찰하는 전망대가 있고 조잡하지 않은 조형물도 서있다. 이거말고도 헤엄치는 수달과 수풀을 헤집고 뛰어다니는 고라니도 강변에서 볼 수 있단다.

여행/ 연강나룻길 '여울길'
연강나룻길 ‘여울길’ 구간. 너른 콩밭이 연출하는 이국적인 풍경이 새삼스럽다. 버드나무 한그루가 운치를 더한다.
여행/ 여울길
개안마루 ‘여울길’ 구간에는 예쁜 나무다리도 있다.
연강나룻길은 세 개의 코스가 있다. A코스는 군남댐에서 옥녀봉(205m)까지 다녀오는 8.7km 구간이다. 완주하는 데 서너 시간 잡으면 된다. 로하스파크에서 시작하는 B코스(5.7km), 중면사무소에서 출발하는 C코스(7.4km)도 있지만 A코스의 평이 좋다. 시야가 일찍 트여 강(江)이 빨리 나타나기 때문에 덜 지루하다. 간간이 숲길이 등장하고 야트막한 능선들이 어깨를 견준 풍경도 볼만하다. 세 코스는 각각 원점으로 돌아오는 순환형이다. 그러나 모두 옥녀봉에서 만나니 출발지와 도착지를 다르게 정하는 이들도 있다.

연강나룻길에서는 두 가지가 유명하다. 첫 번째는 개안마루다. 여울 위에 펼쳐진 등성이인데 이름처럼 ‘눈(眼)이 열리는(開) 풍광’을 볼 수 있다. 군남댐에서 약 3km 지점에 있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미끈하게 흐르는 강줄기에 눈이 호강한다. “강줄기가 용의 몸짓 같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숱한 묵객들은 이 풍경을 보고 애가 탔다. 이 중에는 조선후기 진경산수화로 이름을 떨친 화가 겸재 정선(1676~1759)도 있다. 그는 배를 타고 연강을 유람한 후 ‘연강임술첩’을 그려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전문가들은 그가 개안마루 일대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북녘의 산줄기도 아득하게 보인다. 전망대가 잘 만들어져 있다. 나무로 넓게 데크를 만들었다. 캠퍼에게 명당이다. 이 멋진 풍경을 이불 삼아 하룻밤 묵어가는 이들도 있다.

여행/ 연강나룻길
연강나룻길은 강변 산허리를 에두른다.
여행/ 개안마루길
연강나룻길은 숲길도 좋다.
여행/ 연강나룻길
연강나룻길.
강줄기는 속절없이 평온한데 깃든 시간은 치열하고 또 분주하다. 옛날에 강은 고속도로였다. 임진강에도 배가 많이 다녔다. 조선시대에는 일대에서 거둔 세금과 공물(貢物)을 실은 배가 임진강을 따라 한양으로 다녔다. 하류의 고랑포는 1930년대까지 번성했단다. 개성과 서울이 가까워 온갖 산물이 모였다. 포구 주변에는 가옥들이 촘촘했다. 고대국가 고구려와 백제는 이 유려한 강줄기를 따라 영토전쟁을 치열하게 벌였다. 한국전쟁의 상흔도 아직 오롯한 강이다.

두 번째로 유명한 것은 옥녀봉에 있는 10m 높이의 조형물 ‘그리팅맨(인사하는 사람)’이다. 옥녀봉은 개안마루에서 약 800m를 가면 닿는다. 사방이 탁 트인 정상에 그리팅맨이 허리를 반쯤 구부린 자세로 인사하며 서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그리팅맨과 함께 찍은 사진이 종종 올라온다. 유영호 작가가 소통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진행하는 글로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 자리에 세웠다. 작가의 생각은 안내판에 잘 드러나 있다. ‘인사는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 국가와 인종의 벽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는 시작점이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문화적이고 인간적인 행위’라며 ‘서로가 인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남북의 화해가 시작될 것’이란다. 제주 서귀포, 강원 양구를 비롯해 지구 반대편의 우루과이 등지에도 그리팅맨이 서 있단다.

여행/ 여울길
율무밭을 관통하는 ‘여울길’. 초록의 풍경과 지그재그의 흙길이 회화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여행/ 그리팅맨
옥녀봉의 ‘그리팅맨’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추가한다. 산능선전망대 지나서 시작되는 ‘여울길’ 구간이다. 여기도 풍경이 좋다. 완만한 경사와 자연스러운 산등성이, 잔잔히 흐르는 연강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사위는 등성이가 에두른다. 고요하고 차분한 풍경, 초록의 콩밭과 율무밭이 끝이 없다. 율무꽃이 활짝 피는 봄에는 하얀 꽃밭이 된다. 여기에 콩밭 한가운데 홀로 우뚝 선 버드나무도 운치를 더한다. 누가 일부러 심은 것인지, 바람에 날려온 씨앗이 스스로 뿌리를 내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밭일을 하던 촌부들에게 휴식을 위한 그늘을 내어준다. 이 나무가 또 ‘인증샷’ 명물이다. 무지개 닮은 나무 다리도 예쁘다. 비탈진 땅은 위태롭기보다 평온하다. 따지고 보면 연천은 오래전부터 살기 좋았나 보다. 구석기시대부터 임진강, 한탄강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땅이 연천이다. 전곡읍 전곡리 선사유적지 일원은 국내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지인데 지금도 땅을 파면 주먹도끼를 비롯한 당시 유물들이 나온단다.

연강나룻길 일부 구간은 평화누리길과 겹친다. 옥녀봉에서 원점으로 돌아올 때는 평화누리길을 따라 걸어도 좋다. 숲길이 운치가 있다. 도토리와 산밤도 길에 잔뜩 떨어져 있다. 연강나룻길, 길도 좋고 풍경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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