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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빨리빨리’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패러다임으로

[칼럼] ‘빨리빨리’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패러다임으로

기사승인 2020. 10.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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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형환 한국교통대 산업경영 안전공학부 교수
한국교통대학_산업경영 안전공학부_안형환교수님
우리나라는 1899년 노량진에서 첫 기적소리를 울리면서 철도시대를 열었다. 이후 경부·경의·호남선 등이 개통되고 1970년 중반부터 도시철도가 만들어지며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2004년 세계에서 5번째로 고속철도를 도입해 전국을 반일 생활권으로 만들었고 사회·문화적 변혁을 불러왔다. 2015년 호남·동해선, 2017년 강릉선 개통으로 주요 도시를 신경망처럼 연결하면서 명실상부한 ‘전국 고속철도 시대’를 열었다.

고속철도 운영은 철도시스템 전반에 걸쳐 기술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계기가 됐다. 고속철도 운영 초기에는 프랑스 알스톰에서 차량을 들여왔으나 2010년부터 국내기술로 제작된 KTX-산천이 운행을 시작했다. 이제 시속 400km 대로 운행하는 해무 차량을 개발하는 등 고속차량 기술력도 보유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IT강국의 이점을 활용한 세계 최초의 철도전용통합무선망 LTE-R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형 무선통신열차제어시스템(KRTCS)을 개발해 해외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철도안전 측면에서도 큰 발전을 이뤘다. 철도안전법 제정, 안전종합계획, 철도차량 안전기준 마련, 사고 위험도 분석, 사고·비상대응관리 등 범국가적인 철도종합안전시스템을 구축해 제도적으로 관리하고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 그 결과 국제철도연맹(UIC)과 유럽철도국(ERA)은 연차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단시간 내에 안전성을 개선한 국가이자 매우 우수한 국가로 평가했다.

이런 안전분야 발전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우리나라는 산악지형이 국토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뚜렷한 4계절과 강우량이 집중되는 특성을 가졌다. 많은 터널과 교량을 관리하며 겨울에는 한파와 폭설, 여름에는 폭염·폭우·태풍에 대응해야 했다. 철도운영환경 측면에서 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악조건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기후에도 불구하고 철도 기술력과 안전제도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은 지속적인 안전투자와 기술향상 노력을 경주해왔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개선해야 할 과제도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노후 차량·시설물 교체, 스크린도어·선로변 방호울타리 설치 확대, 건널목 입체화·첨단화·작업자 안전강화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국민과 철도분야 종사자가 체감할 수 있는 철도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 밖에도 기존 철도의 고속화, 무인운전열차 확대, 국제철도 연결 등 새로운 환경이 가져올 안전 문제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

또한 안전투자와 철도기술향상 등 하드웨어적인 안전관리뿐만 아니라 안전문화를 통한 종사자 안전의식 고취 등 소프트웨어적인 안전관리가 매우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빨리빨리’는 한국 특유의 문화이자 양날의 검이었다. 이런 문화의 역동성은 양적성장의 정신적 기반으로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반면,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비롯한 각종 대형 재난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절차와 시스템은 소홀하면서 빠른 성과내기에 급급한 조급증이 낳은 결과이다. ‘빨리빨리’가 부실의 단추가 된 것이다. 비슷한 사고사례는 철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난 서울교통공사 5호선 전동열차 탈선 사고는 두 대의 전동열차를 제대로 연결하지 않고 무리하게 운전하다 벌어졌다. 열차 운행 재개에만 급급해 차량의 상태를 안전하게 확인하지 못하고 서둘러 복구하는 바람에 화를 불렀다.

충분한 안전조치를 시행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지만 서둘러 운행하다가 더 큰 문제가 된 것이다. 안전을 위한 조치보다 ‘운행 정상화’나 ‘지연 회복’에 초점을 맞추다가 2·3차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격이 되었다.

이런 ‘빨리빨리’ 문화는 안전기준에도 남아있다. 국토교통부는 고속철도가 10분 이상 지연되면 운행장애로 분류하고 있고 운행장애는 안전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 철도운영자들에게 빨리 복구하라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현재 철도시스템은 첨단화, 고속화 되어 실제 KTX열차가 차량고장으로 정차 시 고장개소 파악 등 안전조치에만 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10분이내 안전조치를 완료하려는 심리적 압박감에 기관사는 조급하게 운행을 재개하여 2차 사고와 장애 확률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안전보다 우선되는 사항은 없다. 정시성 보다 ‘국민의 생명보호’를 우선하는 해외 선진 철도의 사례를 참고하여 우리나라 철도의 안전문화도 숨을 고르고 살펴봐야 할 것이다. 대량수송을 하는 철도의 특성상 대형사고로 이어져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보다 안전으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하는 시기이다.

빨리빨리 문화는 짧은 시간에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반면, 자칫하면 경과를 무시하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빠른 성과를 위해 의도적으로 반칙을 하거나 필요한 절차와 과정을 생략할 위험성도 있다. 성장을 위해 쉬지 않고 빨리빨리 달려왔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갈 수 있도록 차분하고 꼼꼼하게 안전을 확인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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