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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성소수자·오리보트…축제처럼 특별한 태국 반정부시위

케이팝·성소수자·오리보트…축제처럼 특별한 태국 반정부시위

기사승인 2020. 11. 2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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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현장 곳곳에서 케이팝 울려퍼지고 성소수자 상징 무지개 깃발 휘날려…"민주주의와 자유 위해 함께 한다"
SNS 통해 모이고 노란 오리 고무보트, 공룡인형 등장하기도
"우리 세대는 다르다"
Thailand Protest <YONHAP NO-4965> (AP)
지난 25일 태국 수도 방콕에서 마하 와치랄롱꼰(라마10세) 국왕이 최대주주로 있는 시암상업은행 본부 앞에서 열린 반정부시위에서 시위의 상징이 된 노란 오리 보트를 머리에 착용하고 있는 시위대의 모습./제공=AP·연합
태국의 반정부시위 현장 곳곳에서는 블랙핑크와 소녀시대 등 케이팝(K-POP) 노래가 울려퍼지고, 시위에 함께 하는 성소수자들의 무지개깃발이 휘날린다. 공룡 인형과 노란 오리 고무보트가 등장하고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은 헐리우드 영화인 ‘헝거게임’에 나온 세 손가락 경례를 한다. 수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태국 반정부 시위는 통상 우리가 ‘시위’ 하면 떠올렸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시위대의 주장을 담은 구호만 뺀다면 축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이 태국의 반정부시위를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최근 시위 현장에 등장한 노란 오리 고무보트와 공룡 인형도 이색적이다.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이 발사하는 물대포를 막기 위한 것인데, 오리 고무보트의 색이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색이라 비판의 의미를 더했다. 25일 현장에서는 시위 지도자인 파릿 치와락이 아예 노란 오리 옷을 입고 등장하기도 했다. 시위 현장 곳곳에서 춤을 추며 시선을 끌었던 거대한 공룡 인형은 개헌과 변화를 거부하는 집권 세력을 상징한다. 공룡을 멸망시키고 인류의 등장을 이끌어 낸 소행성을 상징하는 고무 풍선이 공룡인형과 늘 함께 등장하는 이유다.

◇ 반정부시위·성소수자·케이팝 시위 관통하는 메세지는 ‘민주주의와 자유’
수개월 째 계속되고 있는 태국 반정부 시위는 최근 들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26일 방콕포스트 등에 따르면 최근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약 3년 만에 왕실모독법 적용을 지시해 시위대 지도자 10여명이 소환장을 받았다. 25일 방콕 시내에서 열린 집회에서도 경찰이 물대포와 최루탄을 사용했고, 시위대 일부가 누구의 소행인지 알 수 없는 총격을 받기도 했다.

Thailand Protest <YONHAP NO-3738> (AP)
지난 9월 태국 방콕 왕궁 앞에서 열린 반정부시위에 함께 하고 있는 LGBTQ(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퀴어) 시위대의 모습./제공=AP·연합
정부의 지지를 받는 왕실지지세력과 반정부시위대 간 충돌 우려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시위 곳곳에서는 축제와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드랙퀸(drag queen·여장남자) 분장을 한 시위 참석자와 성소수자들이 무지개깃발을 흔들며 시위에 함께 참여해 힘을 보탰다. 해리포터나 유명 캐릭터 코스프레를 한 시위대들도 이목을 끌었다. 시위에 참석한 드랙퀸 T씨는 아시아투데이와의 온라인 인터뷰에서 “드랙퀸은 단순한 여장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고정된 성 역할을 허물고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고 곧 내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 현장 곳곳에서는 블랙핑크와 소녀시대 등 케이팝도 울려 퍼진다. 노래를 부르며 행진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춤도 춘다. 현장에서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와 함께 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블랙핑크의 노래가 가장 많이 울려 퍼진다. 대학생 P씨는 아시아투데이에 “태국인 멤버(리사)가 있다는 것도 인기 이유지만, 블랙핑크는 팀 리더가 없어 모두가 평등하게 지내는 그룹이다. 국왕이라고, 총리라고 독선을 일삼는 현재 태국과는 다른 모습이라 더욱 끌리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S씨 역시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과 같은 노래를 들어보면 어려운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가겠다는 내용이 있어 시위 현장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도 큰 요인일 것”이라 덧붙였다.

◇ SNS 통해 모이고 헐리우드 영화·노란 오리 등 문화차용에 스스럼없어…“우리 세대는 다르다”
태국 반정부시위의 또 다른 특징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경찰의 대응과 정세를 살피고 그에 맞춰 시위 계획을 SNS를 통해 공지해 신속하고 빠르게 모여 ‘게릴라식’으로 시위를 전개한다. 경찰의 원천 봉쇄나 강제해산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태국의 상황을 알리고 국제적 연대를 호소하기도 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서 #WhatHappensinThailand(태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StandWithThailand (태국과 함께해달라)는 해시태그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모인 시위대는 헐리우드 영화 헝거게임에 등장한 세 손가락 경례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다. 검지·중지·약지를 펼쳐 위로 향하게 하는 이 경례는 각각 선거·민주주의·자유를 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룡
태국 방콕 도심에서 열린 반정부시위에서 시위대가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집권 세력을 상징하는 공룡 풍선인형을 입고 춤추고 있는 모습./사진=프라윗 로자나프룩 트위터 캡쳐 갈무리
태국의 반정부시위가 이처럼 특별한 이유는 젊은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국 문화뿐만 아니라 케이팝·할리우드 등 외국 문화와도 친숙하고, 시위 역량을 모으고 자신들의 주장을 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SNS를 통해 진보적인 사상을 키워오고 세계 각지의 민주화운동을 목격한 것도 큰 요인이다. 시위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탐마삿 대학교 학생 P씨와 그 친구들은 본지에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우리만의 방식이 있다. 옛날에는 지도자 한명이 무대에 올라가 연설하고 그를 따라가는 식으로 진행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여러 단체가 연합해 여러 지도자들이 함께 하고 있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 과정을 ‘즐기며’ 투쟁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치고 포기하고 나가떨어질 것이란 정부의 계산은 절대 적중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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