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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피해자 장애 정도 심하지 않아 가중처벌 안한다?…대법 “다시 재판하라”

강간 피해자 장애 정도 심하지 않아 가중처벌 안한다?…대법 “다시 재판하라”

기사승인 2021. 02. 2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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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비장애인 시각으로 장애 정도 쉽게 단정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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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상 큰 장애가 없어 보이는 장애인을 상대로 한 성범죄도 가중처벌 대상이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장애인을 강간한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에서의 ‘신체적 장애’는 신체 구조 등 문제로 일상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피해자가 가진 장애의 정도를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이번 판결은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범죄를 가중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의 취지를 명확히 규명하고,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 의미와 범위, 판단기준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최초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5일 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장애인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등)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3년 10월 말부터 2014년 1월까지 자신의 집 인근에 거주하던 장애가 있는 피해자 B씨를 강제로 추행하고 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인 B씨는 지체 및 시각장애 3급으로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오른쪽 다리 뒤꿈치가 왼쪽 다리에 비해 짧고, 시력이 매우 좋지 않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강간, 성추행 피해자가 ‘장애가 있는 사람’인 경우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판과정에서는 성폭력처벌법이 규정한 ‘장애가 있는 사람’의 판단 기준이 쟁점이 됐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가중요소가 되는 장애인위계등간음죄와 관련 “피해자가 ‘장애가 있는 사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보행 및 시력에 약간의 불편함은 있으나 독자적인 일상생활은 충분히 가능한 정도의 신체 상태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판결에 불복한 검찰은 A씨가 피해자의 신체장애를 범행에 이용했다며 주위적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야한다는 취지로 항소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 역시 B씨의 장애 정도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 항소 기각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성폭력처벌법 6조에서 규정하는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이란 ‘신체적 기능이나 구조 등의 문제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신체적인 장애를 판단함에 있어서 피해자의 상태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고 비장애인의 시각과 기준에서 피해자의 상태를 판단해 장애가 없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폭력처벌법 6조의 취지는 성폭력에 대한 인지능력, 항거능력, 대처능력 등이 비장애인보다 낮은 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해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범죄를 가중 처벌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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