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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얀마 뒤에 아세안 민주주의 있어…신남방정책 진면모 보일 때”

[인터뷰] “미얀마 뒤에 아세안 민주주의 있어…신남방정책 진면모 보일 때”

기사승인 2021. 03. 0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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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홍_전면
박은홍 성공회대 정치학과 교수
미얀마 군부가 아웅 산 수 치 국가고문 등 정부 주요인사를 구금하고 쿠데타를 일으키자 국민들은 한 달 넘게 비폭력 비무장 투쟁을 벌이고 있다. 죽음을 각오한 것처럼 시위에 나선 19살 ‘태권소녀’ 치알 신은 지난 3일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데 이어 시신마저 파헤쳐졌다. 7일에도 미얀마 양곤·만달레이 등 전역에서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UN은 지난달 1일 쿠데타 이후 시위대를 향한 군경의 총격으로 최소 55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다.

Myanmar <YONHAP NO-2325> (AP)
7일 미얀마 제2도시 만달레이에서 보건의료계열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거리 시위를 펼치고 있다. UN은 지난달 1일 쿠데타 이후 반(反)쿠데타 시위대를 향한 군경의 총격으로 최소 55명의 시민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다./제공=AP·연합
동남아시아의 민주주의와 함께 미얀마의 시민사회와 인권에 큰 관심을 갖고 20년 가량 연구와 연대를 이어온 박은홍 성공회대 정치학과 교수는 7일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미얀마 뒤에 아세안의 민주주의가 있다. 자칫 아세안에 ‘민주주의의 역물결’을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 정부가 이제 실질적인 행동으로 미얀마 국민들과 연대해야 할 때다. 신남방정책 외교의 진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시점”이라 강조했다. 박 교수는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 미얀마 사태를 좌시해서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이번 쿠데타로 미얀마가 폭압적 군사정부 시대로 회귀하게 된다면 단순히 미얀마의 위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확연히 후퇴시키게 될 것이다. 세계적 수준에서 보면 ‘민주화의 봄’이 무산되는 상황으로 몰린 중동·아랍 지역에 더해 민주화의 역물결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두 번의 쿠데타를 겪고 현재도 정정이 불안한 태국 같은 인근 국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정부가 미얀마 군부체제 하의 과거 미얀마에 대해 ‘NATO(No Action, Talk Only)’ 외교로 일관했다고 하셨는데
내가 미얀마 시민사회에 관심을 갖게 도와줬던 고(故) 내 툰 나잉(Nay Tun Naing) 민주주의민족동맹(NLD) 한국지부 회장이 했던 말이다. 2000년대 초 미얀마 군정의 폭압이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 미얀마 국내에서는 아웅 산 수 치 여사를 비롯한 NLD 당원들과 1988년 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인 이른바 88세대 활동가들이 어렵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당시 서방국가들은 민주화운동가들이 요구하던 대(對)미얀마 투자 제한 등의 경제제재, 군부 관련 인사들에 대한 비자발급 중단 등의 외교제재 등으로 함께 했는데 아시아권 국가들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이 나름 아시아권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지속적으로 일궈온 국가라 내 툰 나잉 회장도 한국의 조력을 기대했는데 서방의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실질적인 조치 없이 인권증진을 희망한다는 ‘멘트’ 정도로 끝났다. 그런 아쉬움에서 나온 표현이었는데 2021년 현재도 NATO 외교에 머무르고 있는 셈이다.

△ 쿠데타 한달이 지난 이 시점에서 한국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까
미얀마 양곤에 있는 한국 대사관 앞에 시민들이 몰려들어 무릎 꿇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미얀마를 도와달라고 한국어로 쓰인 피켓을 들고 호소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한국은 2019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아세안 국가 정상들을 초청해 “사람 중심의 평화·번영 공동체”를 만들어 가자고 했다. 신남방정책의 키워드인 3P(사람 People 공동체·평화Peace 공동체·상생번영Prosperity)를 재차 천명한 셈이다.

대사관
지난 19일 미얀마 양곤에 위치한 미얀마 주재 한국대사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한국어와 한국어가 쓰인 피켓으로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한국이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사진=SNS캡쳐 갈무리
지금 미얀마 사태를 두고 그간 단순한 캐치 프레이즈로서 3P를 얘기한 것이 아니었음을, 사람 중심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외교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결정적 시점이다. 우리 정부가 내건 3P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닌, 실질적인 내용이 있는 외교 철학을 담은 정책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이다. 서방은 사실상 제재에 돌입을 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본다.

△ 국회가 지난달 26일 미얀마 쿠데타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렇다. 입법부(국회)가 유사 이래 처음으로 타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일치단결해서 규탄 결의를 통과시킨 것은 무척 의미가 있다고 본다. 입법부가 했으니 이제 사람중심 외교를 천명했던 행정부, 특히 외교부가 입법부의 행동에 버금가는 조치를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 어떤 실질적 조치도 보이지 않으니까 한국어를 배우는 미얀마 학생들이 양곤에 있는 한국대사관 앞에 가서 무릎 꿇고 호소한 게 아니겠나.

△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지난 11월 총선을 통해 선출된 의원 298명이 쿠데타 직후 긴급히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를 결성했다. 한국정부가 CRPH야말로 민주적 정통성이 있는 공적인 기구임을 인정한다고 공표하는 것이 1차적인 실질적 조치라 생각한다. 이후 CRPH에서 요청하고 있는 이번 쿠데타 주도세력들에 대한 제재 이행 등 한국정부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해나가면 된다. 다시 말해 첫 걸음은 군부 쿠데타 세력이 내세운 국가행정평의회(SAC)를 인정하지 말고, CRPH가 정통성이 있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표명하는 것이다.

△ 미얀마 사태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홍콩 민주화시위로 다시 촉발됐던 시민불복종 운동의 파고가 2020년 태국의 학생시위를 거쳐 오늘날 미얀마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태국에선 2006년 군부 쿠데타 직후 운동권 진영이 갈렸다, 쿠데타가 태국의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는데 기여했다는, 이른바 ‘굿 쿠’(good coup) 담론을 만들어내고 이를 지지하는 지식인과 운동권 세력이 등장했다. 그러나 미얀마는 반군부진영내에 어떠한 균열도 없다.

△ 아시아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지금 미얀마 국민들은 있는 힘을 다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숭고한 의지로 쿠데타에 반대하고 있다. 이제 공은 국제사회로 넘어왔다. 쿠데타세력이 민간 정부에 권력을 돌려주도록 미얀마 민주주의가 원상회복되도록 국제사회의 일치단결된 압박이 있어야 한다. 미얀마 군부로 하여금 폭압적 체제를 유지하면 불이익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특히 중요한 것은 그간 내정불간섭이란 원칙으로 ‘미얀마 위기’에 소극적이었던 아시아권이다. 과거 2011년 정치 자유화가 있기 전까지 서방은 꾸준히 군부에 대한 제재를 가해왔는데 아시아권은 경제적 진출을 이유로 군부의 숨통을 틔워줬다. 이전처럼 미얀마의 위기 상황을 두고 서방과 아시아권이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될 경우 쿠데타 상황이 고착될 수 있다. 그래서 3P를 내걸고 있는 우리 정부가 아세안 국가들과 함께 윈 민 민간정부로 원상복귀할 수 있도록 연대하고 지원하는 차원에서 ‘미얀마의 평화·번영 회복을 위한 로드맵’을 구상하고 담론을 주도하는 적극적 외교를 실행하길 기대해본다. 이를테면 미얀마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을 향해 민주적 정통성이 있는 민간정부 하의 미얀마가 훨씬 더 안전한 투자처가 될 수 있음을 설득하는 것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아시아권이 서방과 일치단결해서 미얀마 민주주의 위기 해결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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