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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진짜 변화 이끄는 준법감시위…김지형 위원장 올해 과제는

삼성의 진짜 변화 이끄는 준법감시위…김지형 위원장 올해 과제는

기사승인 2021. 03. 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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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경영 이재용 사람들]④
반도체 백혈병 합의 이끌며 삼성과 인연
위원장직 고사했지만 이 부회장 직접 설득
4세 경영 포기·무노조 경영 폐기 성과
위법 리스크 막는 지배구조 개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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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회 앞에 모든 것을 걸겠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수장 2년 차를 맞는 김지형 위원장의 어깨는 올해 더욱 무거워졌다. 국정농단 재판부의 요구로 2020년 2월 출범해 삼성의 준법 문화 정착을 위해 달려온 준법감시위의 노력은 지난 1월 1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법정 구속되면서 무위로 돌아가는 듯 했다. 이 부회장 양형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한때 폐지 가능성도 거론됐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김지형 위원장의 역할은 이 부회장 구속 후 더욱 막중해졌다. 삼성의 진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은 이 부회장 구속 후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됐다.

구속된 이 부회장이 옥중에서 발신한 첫 메시지가 경영 차원의 당부가 아닌 준법감시위 활동 관련 내용이었다는 점에서 우선 그렇다. 이 부회장은 구속된 지 나흘 만에 변호인을 통해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계속 지원하겠다. 위원장과 위원들께서 앞으로도 계속 본연의 역할을 다해 주실 것을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준법감시위의 활동이 단순히 삼성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기업사 차원의 이슈가 됐다는 점도 김 위원장의 역할론에 주목하는 이유다. 국정농단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판결문에 “(삼성 준법감시위는) 지금 이 시점에서 미흡한 점이 있으나 시간이 흐른 뒤 더 큰 도약을 위한 준법윤리경영 출발점으로 대한민국 기업 역사에서 하나의 큰 이정표라는 평가를 받게 되기를 바란다”고 적시했다.

위원회 출범을 알리며 “이 기회 앞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밝힌 김 위원장의 각오가 더욱 비장해진 순간이다.

◇삼성 진정성 의심하며 위원장직 고사…이 부회장 확약 받고 수락
24일 재계에 따르면 김지형 위원장의 준법감시위 위원장직 수락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중과 역할이 주효했다. 삼성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위원장직 제안을 거듭 고사했던 김 위원장은 이 부회장을 직접 만나 위원회에 대한 확약을 받고서야 직을 수락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월 준법감시위 출범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삼성이 정말 진정한 (준법경영) 의지를 갖고 있는지, 위원회 운영에 관해 완전한 자율성을 확실하게 보장을 해줄 수 있는지 총수의 확약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만나서 직접 약속과 다짐을 받았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대법관으로 임명된 김 위원장은 노동법 분야 권위자로 정평이 난 진보 인사다. 1979년 21회 사법시헙에 합격해 법조계에 입문한 후 해군 법무관,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대법관 퇴임 후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장, 김용균 씨 사망 사고 진상규명위원장 등 소수자와 약자를 대변해 왔던 그가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으로 발탁된 것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이도 많았다. 김 위원과 삼성과의 인연은 2014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 백혈병 문제 조정위원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특히 당시 사측을 대표한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과 여러 논쟁을 거친 끝에 피해자 합의를 도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한 관계자는 “김지형 위원장이 삼성전자와 백혈병 피해자가족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한 만큼 삼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며 “진보 인사이면서도 균형감 있게 객관적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췄다는 평가가 많아 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낙점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승계· 노조 금기어였던 삼성…4세 경영·무노조 경영 폐기 ‘성과’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이재용 부회장, 2020년 5월 6일 대국민 사과)

비록 국정농단 사태 재판에서 이 부 회장의 양형 감형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지만 준법감시위가 주도한 삼성의 변화는 막대하다.

무엇보다 이재용 부회장의 4세 경영과 무노조 경영 포기 선언을 도출한 것은 큰 성과다.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가 권고한 이들 사안을 흔쾌히 수락해 지난해 5월 6일 대국민사과로 관련 내용을 직접 발표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1월 14일 삼성의 전자 계열사 중 처음으로 노조협약을 체결했고 삼성전자, 삼성SDI 등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교섭을 진행하고 있어 조만간 결실을 맺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도 “승계, 노조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성에서 꺼내기 힘든 금기어였다. 위원회가 금기를 깼다”며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 변화를 다짐하는 약속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삼성의 행보를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 송년사를 통해 “아직은 진행형이다. 이런 커다란 변화의 약속이 과연 삼성 최고위 경영자와 회사 측의 진정한 의지에 따른 것일까. 아니면 총수 개인의 양형과 맞바꾸기 위해 진짜 속마음과 달리 억지로 꾸며낸 일일까. 이것은 이재용 부회장 본인과 앞으로의 삼성의 역사가 증명해낼 일”이라고 직언했다.

◇실효성 의문 여전…구체적이고 강력한 지배구조 개선안 마련 과제
삼성준감위가 지난 1년간 승계, 노조, 소통이라는 큰 범주에서 삼성의 준법 문화 틀을 다졌다면 올해는 본격적으로 세부 실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정농단 재판부 역시 준법감시위가 준법경영 의지의 진정성은 보여줬지만 최고경영진의 위법행위를 실효적으로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 만큼, 삼성 계열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중심 목표로 두고 구체적인 준법 위반 리스크 대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다.

“한번 포탄이 떨어진 곳에는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 강일원 전문심리위원의 비유처럼 과거 잘못뿐 아니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위법행위를 유형별로 정리해 대비한 것이 준법감시위의 핵심 역할이다. 또 과거 삼성의 미래전략실 등 총수의 위법행위를 주도한 컨트롤타워 조직에 대한 감시 방안 마련,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7개 준법감시위와 협약을 맺은 7개 회사 이외의 회사들에서 발생할 위법행위를 감시할 수 있는 체계 등의 확립도 준법감시위의 과제로 꼽힌다.

김 위원장 역시 “승계 문제에서 파생된 지배구조 개선 의제가 가장 더딘 편”이라며 “그룹 전체의 명운이 걸린 어려운 사안이고 복합적인 조건이 얽혀 있다. 워낙 예민하기도 해서 급하게 다룰 성질의 것도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도 “마냥 미룰 일도 아니다”고 역설하며 지배구조 개선활동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실제 삼성은 준법감시위의 권고에 따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사업지원 TF의 역할 재정립, 관계사들의 준법경영 등 지배구조 개선안 마련을 위한 컨설팅을 의뢰했고, 관련 결과는 곧 나올 것으로 보인다. 최고경영진의 준법의무 위반 리스크 유형화를 위한 외부 컨설팅 기관도 현재 물색 중이라는 게 준법감시위의 설명이다.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오늘날 기업들은 단순히 이윤추구 집단이 아닌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고 실천해야 하는 위치가 됐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경영 방침으로 강조하는 등도 이 같은 흐름”이라며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시대가 원하는 가치이기 때문에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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