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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 참전 용사 106세로 영면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 참전 용사 106세로 영면

기사승인 2021. 04.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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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한 프랑스 특수부대 177인 중 한 명
-작전에 참여한 마지막 베테랑은 이제 단 한 명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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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했던 유일한 프랑스 해군 특공대 출신 위베흐 포흐씨가 17일(현지시간) 영면에 들었다./사진=프랑스 엘리제궁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키에페 특공대의 일원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수행한 위베흐 포흐씨가 17일(현지시간) 영면에 들었다. 프랑스 대통령의 관저인 엘리제궁은 공식 홈페이지을 통해 위베흐 포흐씨의 소식을 알리고 대통령의 이름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위베흐씨는 1914년 5월 28일 보르도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때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한 달 전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전쟁에 참가했다. 전쟁으로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된 위베흐씨는 20살의 나이에 자원입대한다. 그리고 파리에서 교관으로 일하기도 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까지 군 복무를 하고 있었다.

1944년 30살이었던 위베흐씨는 연합군과 함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수행할 키에페 특공대에 들어간다. ‘우리, 키에페 특공대의 남자들’이란 책을 쓴 역사학자 스테판 시모네씨는 “그는 특공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어린 나머지 대원들에게 큰 형과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세력을 뻗쳐가던 독일군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영국·캐나다·폴란드·호주·노르웨이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1944년 6월 6일 화요일 새벽 노르망디에 상륙한 작전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연합군이 독일군을 상대로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연합군은 독일군이 주둔하던 파리에서 가깝고 해안이 넓으며 잔잔한 노르망디의 해변 여러 곳에 병력을 나눠 상륙했다. 당시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은 총 15만 6천 명이었으며 이중 7만3000명은 미국군, 6만1715명은 영국군, 2만1400명은 캐나다군 등이었다.

미국군은 오마하 해변과 유타 해변에 상륙했으며 1만5500명은 공중 임무를 맡았다. 영국군과 캐나다군은 골드 해변과 주노 해변, 스워드 해변에 상륙했다. 프랑스 키에페 특공대는 칼바도스주의 콜빌-몽고메리에 있는 스워드 해변에 상륙했다.

위베흐 포흐씨가 속한 키에페 특공대는 프랑스 해군의 특수부대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한 유일한 프랑스군이다. 키에페 특공대는 6월 6일 스워드 해변에 상륙해 8월 27일까지 싸운 후 영국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위베흐씨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전쟁이 끝날 무렵 전역했다. 민간인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학업에 열중했고 엔지니어로 일을 하며 결혼도 했다. 스테판 시모네씨는 “그는 노르망디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상륙작전 관련 행사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가 해야 할 일을 이미 다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가 전쟁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그분은 정말 친절하고 겸손했으며 예의가 바른 신사였다”고 했다.

한편 위베흐 포흐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당시 상륙작전에 참가했던 177명의 키에페 특공대 출신 중 남은 생존자는 단 한 명이 됐다. 남은 생존자는 레옹 고티에씨로 당시 키에페 특공대에서 가장 어린 군인 중 한 명이었다. 현재 98세인 레옹 코티에씨는 당시 특공대가 상륙했던 스워드 해변에서 단 7km 떨어진 곳에 살던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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