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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국립오페라단 서정오페라 ‘브람스’, 그 가능성과 한계

[손수연의 오페라산책]국립오페라단 서정오페라 ‘브람스’, 그 가능성과 한계

기사승인 2021. 05. 1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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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오페라 공식 벗어나 혁신적 접근 했더라면...아쉬움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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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의 서정오페라 ‘브람스’ 중 한 장면./제공=국립오페라단
예술에서 서정(抒情)이라는 단어는 많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는 투명한 용기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추상적이고도 모호한 개념들을 하나로 묶는 일종의 방어적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제12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일환으로 13~1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 국립오페라단의 서정오페라 ‘브람스’도 서정이라는 말이 가진 이러한 가능성과 한계를 선명하게 보여준 작품이라 생각된다.

이 작품은 이번에 초연된 창작물로,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의 특별한 삼각관계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동안 뮤지컬을 전문으로 제작, 연출해온 한승원이 대본과 연출을 맡았고 지난해 ‘레드슈즈’를 국립오페라단에서 초연한 전예은이 작곡과 편곡을 담당했다. 일종의 쥬크박스 오페라로서, 슈만과 브람스의 작품을 대본에 알맞게 삽입하고 여기에 전예은 작곡가가 편곡하거나 작곡한 곡을 추가했다.

작품의 이름이 ‘브람스’인 만큼 브람스가 화자가 되어 그의 관찰에 따라 극이 전개되는 형식이다. 이 작품은 오로지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지고지순한 순애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클라라와 브람스가 주고받은 편지를 중심으로 그들이 작곡한 음악의 시어들이 대사가 되어 인물과 감정을 표현했다. 슈만과 클라라의 결혼과 불행한 최후, 이들과 브람스의 만남, 음악적 활동 모두 브람스의 시선에서, 클라라와 그의 관계를 중심으로 묘사된다. 결과적으로 슈만은 클라라가 비극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 원인이 되고, 클라라에 대한 브람스의 사랑과 연민이 더욱 깊어지는 계기를 만들어준 인물 정도로 그려진다.

이처럼 세 사람의 관계를 단순화 한 구성은 극의 맥락과 인물의 감정선이 흔들림 없이 유지될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덕분에 오페라라고 이름 붙일 만한 음악적 작업들이 무리 없이 시도될 수 있었다고 본다. 잘 알려진 대로, 슈만과 브람스는 빼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지만 오페라는 작곡하지 않았다. 낭만주의 시대 독일 작곡가들에게 있어 오페라란 다가가기 어렵고, 굳이 친해지고도 싶지 않은 같은 반 친구와 같은 존재였는지 모른다. 슈만과 브람스가 남긴 걸출한 예술가곡들은 오페라로 표현되지 못할 섬세한 감정을 표현했다. 특히 슈만은 클라라와의 사랑으로 인해 고조된 기분을 연가곡으로 가감 없이 표현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한 창작 음악극이 선보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고 참신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립오페라단의 창작물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제작진은 스스로를 오페라라는 종합예술양식에 가두고자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 오페라에 들어가야 한다고 알려진 많은 요소들이 지나치게 골고루 들어갔다. 등장인물과 더불어 합창과 무용이 번갈아 등장한 무대는 볼거리는 제공해 주었지만 90분 단막의 관람시간에 과도한 포만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장면들이 바쁘게 전환되다 보니 각 장면을 주제로 한 음악을 풀어내는 시간이 다소 짧았다. 슈만과 브람스 작품들이 적절하게 배치된 만큼 음악적으로 충분히 음미하고 감상할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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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의 서정오페라 ‘브람스’ 중 한 장면./제공=국립오페라단
젊은 날의 브람스로 분한 손정범 피아니스트는 순간 귀가 청량해질 정도로 뛰어나고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다만 실재인 브람스, 그의 내레이션, 발레리노로 표현된 브람스의 자아 등이 번갈아 등장하거나 함께 공존하는 무대는 혼란스러운 느낌이 들게 했다. 서정오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한 만큼 기존 오페라의 공식에서 벗어나 더욱 혁신적인 접근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은 클라라의 캐릭터이다. 실제로 클라라 조세핀 슈만은 특정인의 부인이나 연모의 대상만이 아닌 위대한 음악가였다. 천재적 비르투오소였고, 슈만과 브람스의 빼어난 해석자로도 이름을 날렸다. 게다가 남편이 죽은 뒤 홀로 6명의 아이들을 길러낸 강인한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클라라는 슈만과 브람스와의 관계 속에 감정이 좌우되는 수동적인 여성으로 표현된다. 특히 두 사람의 남성들이 클라라를 위로한다고 할 때마다 그녀의 어깨에 자신들의 망토를 둘러주며 감싸 안는 모습은 클리셰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클라라 역시 작곡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에서 클라라의 곡은 사용되지 않았다. 클라라라는 인물이 좀 더 입체적으로 그려졌더라면 그녀에게 평생을 헌신한 브람스의 사랑에 더 많은 공감이 생겼으리라 생각한다.

여자경이 지휘한 클림 챔버 오케스트라는 유연한 연주로 제 몫을 다했다. 오페라 공연에서 가장 위험한 시도는 연주자와 지휘자가 서로 등을 지고 있는 무대 구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은 손정범의 피아노 반주가 등장한 슈만의 ‘헌정’(Wibmung) 연주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치밀한 연습과정과 노련한 연주자들 덕분에 다행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냈지만 음정과 박자에서 때때로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분주하고 많은 역할을 소화한 것은 주역 성악가들이다. 클라라 역할의 소프라노 정혜욱, 브람스 역할의 바리톤 양준모, 슈만 역할의 테너 신상근은 가창은 물론이고 연기와 표현력이 뛰어난 성악가들로 알려져 있다. 세 사람은 성악가로서 쉽지 않은 배역을 맡아 안정된 가창력을 들려주었고, 다양한 상황을 능숙하게 소화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국립오페라단에서 제작했다고 하여 굳이 이 작품을 오페라라는 이름으로 한계를 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정’의 언어적 정의로 작품의 성격을 특징지을 필요도 없지 않을까 싶다. 2021년 한국 국립오페라단에서 만들어낸 창작 음악극으로서 그 가능성을 보다 무한하게 펼쳐보기를 제안한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 상명대 교수(yonu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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