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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맛깔 나는 한식 전도사’ 대한 포르투갈인, 텔무를 만나다

[월드&] ‘맛깔 나는 한식 전도사’ 대한 포르투갈인, 텔무를 만나다

기사승인 2021. 06. 0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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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가량 직접 배추김치, 깍두기 등 담가온 김장하는 포르투갈인
포르투갈에서 한국과 포르투갈을 이어주는 민간 외교관
올해는 한국과 포르투갈이 수교를 맺은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해 지난 5월 12일 포르투갈 공영방송국 RTP의 프로그램인 ‘우리의 오후(A nossa tarde)’에서 특별한 코너가 진행됐다. 한 출연자가 생방송을 통해 한·포 수교 60주년을 알리고 한식 요리법과 김, 고추장, 참기름 등의 한식 재료를 소개했다. 이어 능숙한 솜씨로 김밥을 말고 직접 만든 형형색색의 비빔밥에 대해 설명한다.

출연자는 한국인이 아닌 중년의 포르투갈 남성 텔무 사라이바다. 프리랜서 한식 요리가인 그는 포르투갈 한인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타공인 유명인사다. 흔히 한식은 한국인만이 가장 잘 알고 제대로 만들 수 있으며 외국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다. 만들더라도 전통 방식보다 그 나라 입맛에 맞게 퓨전식으로 변형시키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텔무는 웬만한 한국인보다 더 맛깔 나는 손맛으로 퓨전이 아닌 전통 한식을 포르투갈에서 20년가량 만들어오고 있다. 그가 깐깐하게 고른 재료로 담근 배추김치, 깍두기, 오이김치 등 각종 김치는 ‘텔무네 김치’로 포르투갈 한인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포르투갈에 거주하는 한인은 약 200명 대다. 오랜 세월 동안 한식당이 없었고 한국 식료품 가게가 생긴 것도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한식용 재료 수급이 열악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텔무가 담근 김치 및 수제 도시락은 포르투갈 한인사회에 큰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김치 소비자의 대부분은 한국인이지만 입소문을 듣고 퓨전 식당의 영국인 셰프와 포르투갈 판사까지 그를 찾아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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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무 사라이바 한식 요리가가 만든 한식 수제 도시락들이 진열돼 있다. 텔무는 웬만한 한국인보다 더 맛깔 나는 손맛으로 퓨전이 아닌 전통 한식을 포르투갈에서 20년가량 만들어오고 있다. /사진=본인제공
텔무의 한국음식 사랑은 한국인 아내 박선주 씨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1990년대 20대 청년 텔무는 다양한 국가에 봉사활동을 다녔었다. 해외에 가면 언제나 전통시장부터 방문해서 현지 음식을 맛보는 습관을 가졌다. 이유는 시장은 그 나라의 기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며 음식이야말로 사람들의 가장 순수한 본 모습을 보여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텔무는 1997년 한국에 첫 발을 내디뎠다. 아시아 중에서는 처음 방문한 국가였고 한국 음식에 대한 정보도 접하기 어려웠던 시기였기에 큰 호기심을 안고 서울의 남대문 시장에 들렀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방문했었던 나라에서 보지 못했던 역동성과 이국적인 모습에 매료됐다고 한다.

조용하고 느린 포르투갈의 외식문화와 정반대로 활기차고 빠른 한국 외식문화는 그에게 상당한 흥미를 안겨주었다. “마치 그간의 역경에도 주저앉지 않고 앞을 향해 꾸준히 달려온 한국사회를 그대로 투영하는 것 같았다”고 텔무는 회상했다.

1999년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아내와 함께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돌아온 텔무는 혼자 조심스레 한식 만들기를 시도했다. 한국에 계신 장모님의 조언과 음식 책자, 몇몇 인터넷 정보를 참조하며 배추를 소금에 절여보고 불고기 소스도 만들어봤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최적의 재료를 찾아다니고 조리법과 보관방법에 사소한 변화를 주며 연구해나갔다. 무엇보다 장모님의 김치 맛을 구현하고자 전북 임실 고춧가루만을 고집하며 김치를 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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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무 한식 요리가가 전북 임실에서 공수한 고춧가루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오른쪽은 그가 만든 김치들. 텔무네 집에는 이 외에도 2대의 냉장고가 더 있다. 텔무는 웬만한 한국인보다 더 맛깔 나는 손맛으로 퓨전이 아닌 전통 한식을 포르투갈에서 20년가량 만들어오고 있다. /사진=본인제공
어느날 입맛 까다로운 한국 지인이 텔무의 김치를 맛보고는 그 맛에 만족하며 한인회 야유회 때 선보여도 되겠다고 제안했다. 아시아 마트에서조차 김치를 팔지 않았던 시절 텔무가 정성껏 만든 ‘텔무네 김치’는 점차 포르투갈 한인사회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급기야 한인들이 수고비를 주며 텔무의 김치를 구매하기 시작했고 덩달아 불고기, 제육볶음, 해물파전 등 수제도시락 주문도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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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무 한식 요리가가 밤을 꼬박 세우면서 만든 150인분 김밥 도시락./사진=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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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무 한식 요리가(왼쪽 앞)가 리스본의 유명 푸드마켓인 타임아웃 마켓에서 포르투갈인을 대상으로 한식 워크숍을 열고 있다. 텔무는 웬만한 한국인보다 더 맛깔 나는 손맛으로 퓨전이 아닌 전통 한식을 포르투갈에서 20년가량 만들어오고 있다. /사진=주 포르투갈 대한민국 대사관 페이스북
그는 스스로를 “그냥 오지랖이 넓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텔무는 한국인과 포르투갈인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든든한 ‘민간 외교관’ 같은 존재이다. 텔무는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 한국음식은 매운 음식 뿐이라는 고정관념이 크다”며 “상대적으로 일식에 비해 한식의 인지도가 낮은 것도 사실”이라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이어 그는 “하지만 전통적인 한식은 다양한 야채와 곡물을 이용한 건강한 음식이 많다. 알고 보면 일식보다 한식이 포르투갈인 입맛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한식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풍부한 맛과 영양을 함께 가진 음식이란 것을 알리고 싶었다”며 깊은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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