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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옵티머스사태, 그후 下] 금융·증권 범죄 대응역량 키워야…檢직접수사 빠진 ‘협력단’에 우려

[라임·옵티머스사태, 그후 下] 금융·증권 범죄 대응역량 키워야…檢직접수사 빠진 ‘협력단’에 우려

기사승인 2021. 06.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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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수단 폐지 1년 3개월 만에 '협력단'으로 부활 조짐
前 합수단장들 "금융·증권 범죄 수사 협력단만으로는 한계"
지난해 금융위 이첩 자본시장법 사건 처리율 22%에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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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의도 증권가나 금융업계에서 검찰을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더라. 시쳇말로 ‘겁날 게 없다’는 느낌이다. 항상 불법을 꾀하는 사람들은 부릅뜬 눈으로 자신들을 보는 걸 두려워 하는 데 이젠 거칠 게 없지 않겠느냐.”

한때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근무했던 한 검찰 수사관의 말이다. 청사에서 정확히 정동(正東)쪽으로 안양천을 너머 대한민국 유수의 금융·증권사들이 밀집한 여의도를 예의주시하고, 시시때때로 ‘사정(査定) 칼날’을 휘두르던 서울남부지검에는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이 있었다. 합수단은 일명 ‘여의도 저승사자’로 통했다.

수조원대 금융 투자 피해를 입힌 라임·옵티머스 환매 중단 사태 등 굵직한 금융·증권 범죄가 벌어지거나 범죄 수법이 첨단화되는 징후가 포착되면 곧잘 사정기관의 범죄 대응 역량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지적이 나오면 그 뒤에는 항상 남부지검 합수단의 ‘영광 스토리’가 따른다.

9일 법조계 안팎에서는 금융·증권 범죄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금융·증권 범죄 대응 역량을 강조하면서, 검찰 조직개편안에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협력단)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협력단은 소속 검사가 직접수사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여, 과거 합수단 만큼의 무게감은 없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금융·증권 범죄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검찰과 유관기관의 ‘단순 협력’만으로는 범죄 대응 능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합동수사체의 강점이 발휘되기 위해선 검찰의 ‘직접수사’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前 합수단장들 “대형 금융·증권 범죄 수사, 신속 정보 공유·강제수사가 ‘키’”

라임·옵티머스 사건과 같은 대형 금융·증권 범죄는 전문성이 있어 복잡하고 피해 규모가 크다는 특성이 있다. 또 단기간에 치고 빠지는 범죄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즉 검찰 수사에 이르기까지 각 유관기관의 자료 확인과 분석, 보완 조사 등이 신속하고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합수단은 이 같은 신속·유연한 대응 체제가 가능한 구조였다. 검찰은 물론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예금보험공사, 국세청 등 유관기관에서 나온 파견 인원들이 한 장소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패스트트랙을 통해 범죄 의혹에 조기개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합수단을 폐지한 이후 유관기관 간의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고, 파견 인력도 줄어드는 등 신속한 대응이 어려워지면서 범죄 대응 역량이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합수단 폐지 전후로 검찰의 금융·증권 범죄 사건 수사 속도 및 처리 수준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이 지난 2016~2019년 금융위로부터 이첩받은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처리율은 89%(294건 중 262건)에 달했다.

하지만 합수단이 빠진 지난해에는 58건을 넘겨받아 13건만을 처리했고, 올해는 지난달까지 38건을 넘겨받아 단 1건만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는 합수단이 폐지된 이후로 라임·옵티머스와 같은 금융·증권 사기 범죄에 손을 못 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합수단장 출신의 A변호사는 “검찰이 기록 검토나 법률지원을 해주는 단순 백업 형태의 협력단은 제대로 가동되기 어렵다”며 “여러 유관기관이 모여 함께 즉시 대응할 수 있던 게 최고의 시너지였는데, 검찰의 신속한 직접수사가 연결되지 않으면 ‘합동’의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합수단장 출신의 B변호사도 “정상적인 형사사법 체계에서 벗어나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에 압수수색권을 줄 만큼, 금융·증권 범죄 수사에서는 신속성이 중요하다”며 “합수단을 만들었던 이유가 신속한 압수수색 및 강제수사인데 강제수사를 빼버리면 진행이 될 수 없다. 검찰의 직접수사를 배제한다는 건 수사시스템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공인전문검사 양성·협업 시스템 구축 필요…금융·증권전문 1급 ‘全無’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의 금융·증권 범죄 자체 대응력을 끌어올려야 라임·옵티머스와 유사한 사건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증권 범죄와 같이 특수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서는 오랜 수사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찰은 2013년부터 검사의 전문 분야 역량 강화를 위해 ‘공인전문검사·수사관’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검사는 43개 분야에서 1급 ‘블랙벨트’, 2급 ‘블루벨트’로 나눠서 인증하고, 수사관은 28개 분야에서 2급만 인증했다.

이 중 금융·증권 분야 전문검사는 전체 전문검사 179명 중 단 7명에 그치고 있으며, 블랙벨트 보유자는 단 1명도 없다. 전문수사관은 422명 중 단 10명만이 금융·증권 분야 전문 수사관으로 인증받았다.

이 때문에 금융·증권 범죄 대응 수준을 올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전문가를 양성하고 이를 통해 검찰 자체의 대응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B변호사는 “검사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전문검사를 키워야 한다”며 “금융 수사 관련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검사로부터 아래로 대물림돼야 검찰 자체의 수사 역량이 유지되고 전문성이 확대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전문검사의 양성보다 유관기관 간 협업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도 있다. A변호사는 “금융·증권 범죄 수사는 검찰이 혼자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금융·증권 쪽에 전문성이 있는 검사나 수사관은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뛰어난 검사라도 금융 기관의 협조가 없으면 수사를 할 수 없다는 뜻”이라며 “유관기관이 즉각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 체계를 만드는 것이 금융·증권 범죄 대응력을 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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