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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판결 두고 법조계도 ‘갑론을박’…13년 전 보다 엄격해진 ‘청구권협정’ 해석

강제징용 판결 두고 법조계도 ‘갑론을박’…13년 전 보다 엄격해진 ‘청구권협정’ 해석

기사승인 2021. 06. 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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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다른 강제징용 손배 판결 당시 '시효 만료'로 원고 패소 판단
이어 대법은 "청구권 소멸했다고 볼 수 없어" 논리로 뒤집어
재판부 "소송으로 청구권 행사할 수 없어"…아예 '소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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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맡은 1심 재판부가 3년 전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 판결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단을 내놓으면서 법조계가 혼란을 겪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대법원 판례가 해당 사건에만 기속력이 있어, 판례법 위주인 미국과 달리 대법원과 반대되는 판단을 내놓은 것이 위법하지는 않다. 반면 일각에서는 단순히 법리 해석을 떠나 법원이 정치·사회적 효과를 감안한 판결을 내놨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제기하며 갑론을박이 커지고 있다.

9일 법조계 안팎에서는 지난 7일 강제동원 피해자 송모씨 등 85명이 일본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재판부가 소송 청구 자체를 각하한 판결은 13년 전 첫 손배소 당시 1심 법원이 내놨던 판결보다 ‘청구권협정 원칙’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는 앞서 다른 강제징용 손배소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사례와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법 민사10부(윤준 부장판사)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제철 등에 강제 동원된 여모씨 등 5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하지만 당시 재판부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 자체가 소멸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청구권협정이 됐더라도 ‘위자료 청구권’까지 소멸한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소송이 제기된 시점이 양국 사이가 정상화된 1965년을 기점으로 해도 민법 766조 2항이 규정하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한 때에는 청구권이 시효로 인해 소멸한다’고 한 기준을 훨씬 넘어서 그 시효가 소멸됐다고 봤다. 청구권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그 시효가 소멸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이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면서 진행된 파기환송심에서도 법원은 “국가가 조약을 통해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것이 국제법상 허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와 국민 개인이 별개의 법적 주체임을 고려하면 조약에 명확한 근거가 없는 한 조약 체결로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 이외에 국민의 개인청구권까지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전합도 다수의견을 통해 개인청구권이 1965년 체결된 청구권협정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이번 재판부는 개인청구권에 대해 강제징용 피해자가 소송을 통해서 권리를 아예 행사할 수 없다고 봤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개인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의해 바로 소멸 또는 포기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이를 소송으로 행사할 수는 없다”며 원고들의 소를 모두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이다.

재판부는 청구권협정 2조에 명시된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이나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의미를 문언 그대로 해석,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송으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일각에서는 문언 그대로를 따른 이번 판결이 법리적으로 봤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재경지법 A판사는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것은 오히려 독립 기관인 법원을 더 큰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라며 “비난을 무릅쓰고 여러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건 건강한 일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이 “과거사 배상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내세운 일본의 변명같이 느껴진다”는 국민들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민변 등 15개 시민단체는 공동논평을 통해 “판결이 야기할 정치·사회적 효과는 사법부가 판단 근거로 삼을 영역이 아니다”며 “민사사건 본안 재판은 원고와 피고 간 권리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면 될 뿐 판결 확정 이후 사정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현저한 사정 변경이 없다면 전합의 의견에 따라 판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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