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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이다’…세브란스병원 ‘가족수당’ 성차별 복지 논란

‘시대착오적이다’…세브란스병원 ‘가족수당’ 성차별 복지 논란

기사승인 2021. 06. 2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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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만 받는 '가족수당' 대놓고 성차별 하는 행위"
세브란스 측 "성차별 조항 노사 간 합의 결정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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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연세 세브란스 병원이 공지한 ‘가족수당’ 조항 /블라인드 캡처
세브란스병원이 부양가족 수에 따라 직원들에게 일정액 또는 일정비율로 지급하는 ‘가족수당’ 제도가 ‘성차별 복지’라는 내부 지적에 휩싸였다.

세브란스병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가족수당 조항에는 ‘장남만 부모님과 동거하지 않아도 수당 받을 수 있다’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조항대로라면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여성이 첫째거나 딸만 셋인 가족은 받을 수 없지만, 장남은 부모를 부양하지 않아도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이 조항 때문에 병원 내부에서는 ‘장남수당’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병원 간호사 A씨는 “공지사항 내 가족수당은 명백한 성차별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면서 “지속적으로 병원 내 노동조합 측이 성차별 조항 삭제를 요구했지만, 이번 발표로 그 행위를 모두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직원 B씨는 “성차별 조항이기 때문에 병원 내 책임자에게 따져봤지만, 이날까지 수정된 내용은 없었고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며 “성차별 조항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고발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24일 본지 취재 결과 이처럼 직원들의 항의와 개선이 빗발치고 있지만 문제의 조항은 여전히 수정되지 않은채 병원 측은 요지부동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당 조항이 성차별적이라며 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는 당시 “사회 변화에 따라 가족의 형태가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고 장남이 부모 부양을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 또한 크게 낮아졌으며 실제로 부모를 부양하는 실태도 변했다”며 “가족수당 지급 시 딸, 차남 등의 직원을 달리 대우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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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 세브란스병원 노동자 측이 원하는 ‘가족수당’ 지급 범위, ‘장남’ 관련 단어가 없다. /제보받은 사진
인권위까지 나서서 수년째 차별적 가족수당 제도 개선을 권고하고 있지만 현장의 개선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가족수당제도는 현행법이 아닌 노사합의에 따르기 때문이다. 헌법은 36조 제1항에서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남녀의 성을 근거로 차별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 또 근로기준법 제6조도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해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가족수당’에 관한 별도의 규정은 없는 실정이다.

가족수당 문제가 노사 협상 테이블에 올라도 임금·정규직 전환 문제 등에 묻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 노사간 합의를 이루지 못해 제도 개선이 실패한 경우도 있다. 지난 1993년부터 ‘부모와 따로 사는 경우 장남에만 가족수당 지급’ 규정을 유지하고 있는 경북대병원이 대표적이다. 경북대병원 측은 2018년 인권위의 ‘성차별 규정’ 시정 권고에 따라 노조와 논의했지만 “부모와 따로 사는 장남에게도 가족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개정안에 노조가 동의하지 않아 개정이 어렵다”며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정기적으로 직원들에게 보내는 복지 공지사항 속 성차별 조항을 자세히 검토하지 못했다”면서 “내부적으로 직원 불만이 발생해 문제점을 인지하고 조항에 대해 노사 간 합의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세부사항 조율과 수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바뀌는 내용과 날짜는 확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기업 내 가족수당이 아직도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한국 사회가 가부장적인 사회를 아직 고치지 못하고 있다는 현상을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행위”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이어 “아직 한국 사회가 제대로 된 성평등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노사 간 합의로 고쳐야 할 악습이지만, 노동 조합 대부분이 남성 위주로 꾸려져 바뀌고 있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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