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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마음, 詩로 읽고 寫眞으로 보다! <중종 1>

임금의 마음, 詩로 읽고 寫眞으로 보다! <중종 1>

기사승인 2021. 06. 20.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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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중종>
1. 무제
千峯萬壑似雲飛 수많은 산봉우리와 골짜기 위로 하얀 구름이 노닐고
五宿松京今日歸 자연을 벗 삼아 송경(개성)에서 닷새 묵고 오늘 돌아가네
望遠山光鋪錦褥 저 멀리 눈부시게 빛나는 산은 비단 요를 깔아놓은 듯하고
觀光皆是古人非 자연은 오늘도 그대로인데 사람은 옛사람이 아니로다

<해설>
1506년 음력 9월 2일은 조선왕조에서 처음으로 임금이 신하들에 의해 강제로 폐위된 날이다. 중종반정을 일으킨 박원종은 연산군을 강화도로 폐위시키고, 그 자리에 성종의 또 다른 적자이자 그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왕위에 올렸다. 진성대군은 연산군의 눈을 피해 조용히 숨죽이며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조선의 국왕, 중종이 된 것이다.
중종은 연산군의 생모인 제헌왕후(폐비 윤씨)가 궐 밖으로 쫓겨난 뒤 새로 맞이한 정현왕후의 아들로 1494년(성종 25)에 진성대군으로 봉해졌으며, 1506년 11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중종은 연산군 시대에 무너진 유교적 통치 질서를 다시 세우고자 조광조를 등용해 새로운 왕도정치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신진세력의 과격한 개혁정치는 보수적인 훈구파의 반발을 불러왔고, 중종 역시 조광조의 지나친 도학적 언행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중 1519년 남곤, 심정 등의 모함에 따라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등 신진 사림파를 숙청하였다. 이처럼 중종은 재위 초기 어진 정치를 펴는 데 상당히 의욕적이었으나, 기묘사화 이후 간신들의 정국 혼미로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중종은 1544년 음력 11월 14일 세자인 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5일 창경궁 환경전에서 재위 38년 2개월 만에 승하하였다.
이 시는 《중종실록》 80권, 1535년 음력 9월 19일 자에 기록된 것이다. 중종은 신하들과 함께 개성으로 행차해 5일간 머물다가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천수정에 이르렀을 때 영의정 김근사와 좌의정 김안로를 불러 어제시를 내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옛날부터 군주와 신하가 서로 시를 지어 주고받는 일은 그르다고 했다. 그러나 옛날에도 어제시가 있었으니, 조정 대관들이 어찌 그것을 보지 못했겠는가. 내가 평소 시 짓기를 좋아하지 않으나 천재일우(千載一遇·좀처럼 얻기 어려운 좋은 기회)로 이 고도(개성)에 행차하게 되었고, 참배를 끝내고 오늘 환궁하게 되어 너무도 기쁘다. 이곳에 이르러 좌우의 벽에 ‘비飛’자로 운을 달아 지은 시를 많이 써놓은 것을 보고, 그 운에 따라 나도 시를 지어 회포를 보이고자 한다.” 글/사진 이태훈. 에디터 박성일기자 rnopark99@as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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