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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꽃화분 화사한 마을 전체가 호텔

[여행] 꽃화분 화사한 마을 전체가 호텔

기사승인 2021. 08. 0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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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고한 마을호텔 18번가
여행/ 마을호텔 18번가
마을호텔 18번가. 방치됐던 식당을 개조해 지난해 5월 문을 열었다. 골목의 10여 개 상점들이 부대시설이다./ 김성환 기자
‘마을호텔 18번가’에 붙은 섬네일은 이렇다. “마을이 호텔인 곳입니다. 골목길이 호텔의 엘리베이터와 복도가 되는 누워 있는 호텔을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동네 전체가 ‘누워 있는 호텔’이라니 무슨 얘기일까.

여행/ 마을호텔 18번가 야외 테라스
폐허를 꾸민 마을호텔 18번가의 야외 테라스/ 김성환 기자
마을호텔 18번가는 강원도 정선 고한읍 고한18리 골목에 있다. 객실이 3개에 불과한 초미니 단층 호텔이다. 가장 작은 객실은 ‘온돌방’이다. 나머지 객실에는 침대가 각각 2개씩 놓였다. 이러니 하루 최대 수용인원은 10명 남짓이다. 부대시설이라고 할 것도 없다. 정문 옆 작은 휴게공간과 호텔 뒤 테이블 2개가 놓은 야외 테라스가 전부다. 웬만한 여관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데 엄연한 호텔이란다.

여행/ 마을호텔 18번가
고한18리 골목의 ‘들꽃사진관’/ 김성환 기자
얘기는 이렇다. 고한은 폐광지역이자 카지노 도시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빈집 많았던 고한18리의 골목도 음침했다.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관광객이 찾도록 해보자는 의견이 모였다. 10여 명의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고 빈집을 개조해 예쁜 상점으로 꾸몄다. 마을호텔 18번가 역시 오랫동안 영업하지 않고 방치된 식당을 리모델링해 작년 5월에 문을 열었다.

골목의 10여 개 상점들이 부대시설이다. 마을호텔 18번가 옆 공예카페 ‘수작’은 조식을 제공하고 컴퓨터와 팩스가 구비된 광고회사 ‘하늘기획’은 비즈니스센터다. ‘마을회관’은 단체 워크숍이나 소규모 연회장으로 활용된다. 투숙객의 세탁 서비스는 ‘그린세탁소’가, 미용은 ‘영주이발소’가 맡는다. ‘들꽃사진관’은 호텔과 연계한 패키지로 투숙객에게 추억을 선사한다. 중화요리 음식점 ‘국일반점’을 비롯해 ‘구공탄구이’ ‘예촌돌솥밥’ ‘누리한우촌’ ‘먹방쭈꾸미’ 등의 식당도 ‘훌륭한’ 레스토랑으로 각각의 별미를 제공한다. 호텔을 중심으로 연결된 상점들은 투숙객에게 각각 10% 할인을 제공한다. 투숙객은 약 400m의 골목을 걸어다니며 부대시설을 즐긴다. 골목이 호텔이다. 서 있지 않고 누워 있는 호텔!

여행/ 고한18리 골목 풍경
마을호텔 18번가가 있는 고한18리 골목에는 문앞에 꽃화분이 놓인 집이 많다./ 김성환 기자
여행/ 고한17리 골목
음침한 골목길이 화사한 ‘꽃거리’로 변신했다./ 김성환 기자
골목에선 매년 여름마다 ‘고한 골목길 정원박람회’도 개최된다. 마을과 상점을 살려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행사다. 인근 함백산 만항재가 이름난 야생화 군락지인 것에 맞춰 골목길을 화사한 야생화 거리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박람회는 벌써 3회째다. 올해는 오는 13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지역 예술가들이 다양한 문화예술작품을 선보이고 버스킹 공연도 열린다. 한 해 동안 정원과 화분을 잘 가꾼 주민을 대상으로 ‘베스트 가드너’도 선발한다. 정원박람회가 시작되며 꽃과 식물을 정성스럽게 가꾸는 주민들이 늘었다. 플로리스트 자격증까지 딴 사람도 있단다. 집집마다 꽃화분이 놓여 있으니 골목이 시나브로 화사해졌다. 참여 주민들이 늘어나며 옆 동네인 고한17리의 골목도 덩달아 변했다. 꽃과 식물을 가꾸고 이를 대문 앞에 놓아둔 집들이 많아졌다.

여행/ 지장천과 산책로
마을호텔 18번가가 있는 고한18리. 지장천을 따라 산책로가 잘 조성됐다./ 김성환 기자
카지노 옆 동네여서 무섭고 폐광지역이라 음침할 것 같았는데 마을호텔 18번가, 고한 골목길 정원박람회를 구경하고는 “생각했던 것과 다르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마을호텔 18번가 협동조합 김진용(49) 상임이사는 “빈집투성이에다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었는데 이제 관광객이 다녀요”라고 말했다. 골목의 여관이나 민박이 주로 카지노를 이용하는 장기 투숙객을 대상으로 영업한 탓에 일반 여행자가 묵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는데 마을호텔 18번가에는 가족도 오고 연인도 온단다. “기존 호텔이나 리조트에 식상한 사람들, 마을에서 놀아보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와요. 올해 안에 마을호텔 2호점을 열고 내년에는 3호점을 낼 계획이에요. 5~6년 지나면 참여시설도 많아지고 제대로 된 마을호텔이 될 겁니다.”

여행/ 만항재
만항재 ‘하늘숲길공원’의 낙엽송 숲/ 김성환 기자
알음알음 찾아오는 여행자는 마을과 골목을 기웃거리고 마을 앞을 흐르는 지장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걸으며 추억을 쌓는다. 또 만항재, 정암사, 삼탄아트마인도 함께 돌아보며 여정을 즐긴다. 마을호텔 18번가에서 멀지 않은 곳들이다.

만항재(1330m)는 함백산 턱 밑을 넘는 고개다. 정선 고한과 태백 화방재(어평재)를 연결하는 414번 지방도가 만항재를 지나는데 이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을 지나는 자동차도로다. 이러니 풍광이 장쾌하다. 고산준봉이 파도처럼 펼쳐지고 하늘이 손 닿을 듯 가깝다. 꽃도 좋고 숲도 우거졌다. 정상부에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천상의 화원’으로 불린다. ‘하늘숲길공원’ 등 소공원이 잘 조성됐다. 낙엽송(일본잎갈나무)이 우거진 숲은 여름 뙤약볕도 거뜬히 막아준다.

여행/ 정암사 수마노탑
정암사 수마노탑/ 김성환 기자
정암사와 삼탄아트마인은 정선 쪽 만항재 들머리에 있다. 정암사는 신라 자장율사가 645년에 창건했다고 전한다. 정암사는 수마노탑이 유명하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당나라에서 기도 중 문수보살을 친견한 자장율사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받아서 돌아와 정암사를 비롯해 경남 양산의 통도사, 평창 오대산 상원사, 인제 설악산 봉정암, 영월 사자산 법흥사 등 5곳에 나누어 모셨단다. 수마노탑(국보 제332호)은 정암사에서 사리가 봉안된 탑으로 전한다. 단단한 석영 광물인 마노석을 벽돌처럼 다듬어 9m 높이에 걸쳐 7층으로 차곡하게 쌓았다. 지붕돌 처마에 달린 풍령(風鈴·처마에 다는 작은 종)도 예쁘다. 청아한 풍령 소리를 들으려고 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마노석은 불가에서 꼽는 7개의 보석 중 하나다. 물에서 건져 올렸다고 ‘수(水)’가 붙었다. 적멸궁 뒤로 난 가파른 계단 길을 따라 오르면 수마노탑이 나온다.

여행/ 삼탄아트마인
탄광 조차장 시설을 활용한 삼탄아트마인 레일바이뮤지엄/ 김성환 기자
삼탄아트마인은 폐광을 활용한 문화예술공간이다. 1964년부터 38년간 운영되다 2001년에 폐광된 삼척탄좌 정암광업소의 자원을 활용해 꾸몄다. 사무동 건물이었던 삼탄아트센터에는 작업용 장화를 씻던 세화장, 몸을 씻던 샤워장 등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있다. 석탄을 캐 올리고 실어 나르던 조차장을 이용한 레일바이뮤지엄은 그 자체가 박물관이다. 수갱을 비롯해 탄차, 컨베이어, 레일, 광차 등을 볼 수 있다. 갱도에 압축공기를 밀어 넣던 중앙압축기실 건물은 원시미술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객실 3개의 초미니 호텔이 마을을 참 많이 바꿨다.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모두 떠난 황폐한 탄광개척지 같았던 동네가 가족끼리, 연인끼리 소소한 추억을 쌓고 가는 훈훈한 공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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