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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장이머우’라는 딜레마

[칼럼]‘장이머우’라는 딜레마

기사승인 2021. 09. 2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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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
얼마 전, 수업 시간에 영화 속에 숨어있는 메시지에 대한 예시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젊은 세대에게 장이머우 감독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폐회식의 연출자로 알려졌지만, 나이 든 세대에겐 중국 내 반체제인사로 인식돼 있다. 소위 중국의 5세대 감독으로 분류되는 장이머우의 이력은 화려한데, 1988년에서부터 1994년까지 국제영화제인 베를린, 베니스, 칸 영화제에서 연속으로 수상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 감독의 작품은 당시 중국공산당의 입장에선 불편한 영화였다. 전근대적인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당대의 실상을 여과 없이 묘사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장이머우는 당국으로부터 분명 체제에 반한 인물로 낙인찍혔을 만하다.

1950년생인 감독은 예민한 청소년기, 홍위병으로 대변되는 참혹한 문화대혁명을 온몸으로 경험한 세대이다. 마오쩌둥 사후, 청년이 되어 영화를 공부한 장이머우의 입장에서 전근대적인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낸 문화대혁명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을 테고, 이는 고스란히 그의 영화에 반영됐다. 그런데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으로 요약되는 개혁개방정책을 이어받은 장쩌민체제에서 점차 자본화되어가는 중국의 변화는 감독에게 영화 연출의 다른 이정표를 제시한다. 감독은 2002년 당시 장쩌민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의 정책에 헌정하는 영화 ‘영웅’을 연출했다. 어쩌면 장쩌민이 눈엣가시였던 장이머우를 어르고 달랜 결과일 수도 있다.

여하튼 장이머우 감독의 ‘영웅’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위대한 가치에 대해 집요하리만큼 설득하고 있다. 물론 그 위대함이란 철저히 중국, 그것도 한족의 입장에서 기술된 논리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탄탄한 스토리 라인, 화려한 볼거리와 캐스팅에 걸맞은 배우들의 열연 등 상업 영화로서 흠잡을 만한 점이 없다. 자국인이 아닌 마당에 ‘중국은 하나여야 한다’는 메시지보다는, 한편의 재미있는 사극을 봤다는 생각에서 멈췄을 것 같다. 하지만 만약 그 관객이 중국의 젊은이라면 극장을 떠나서도 사뭇 진지하게 영화를 복기했을 듯싶다. 아마도 추측건대 그들 중 많은 수가 고개를 끄덕였으리다. 또는 더 나아가 어떤 웅대한 감정이 그들 마음을 지배했을 것 같다.

뉴스를 통해 중화 민족주의로 무장한 중국의 N세대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지난 7월 중국공산당 백 주년 행사에서 위대한 중국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역량을 다할 것이라고 맹세하는 젊고 아름다운 청년의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예사롭지 않았다. 후진타오를 거쳐 2013년 주석으로 선출된 시진핑은 그간 유지된 중국 특유의 집단지도체제를 해체하고 현재 독주하고 있다. 그의 집권기에 청소년기와 대학 시절을 관통한 중국의 N세대가 보수화돼가는 것은 자명해 보이기까지 하다. 예의 그 청년의 모습은 중국 젊은이의 내면을 반영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들 세대 중 중국 내 인사이더라 할 수 있는, 당원증을 부여받은 젊은이들은 시진핑의 홍위병을 자처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어린 시절 장이머우의 ‘영웅’을 봤을 것이고, 베이징올림픽 개·폐막식을 보고 중화민족의 자부심을 느꼈을 터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시기, 청소년기와 스무 살 앳된 청년기를 관통한 장이머우가 극복하고 싶었던 전근대적인 광기가 재연되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일 수밖에 없다.

문득 ‘감독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이게 아닌데’ 하는 회한의 정서로 밤잠을 뒤척일까, 아니면 마치 군대 열병식과도 같은 당 행사에서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 벅차할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규모가 큰 대국의 애국주의는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역시 이미 오랜 기간 자국중심주의의 토대가 되는 애국주의로 무장하고 있다. 이들 국가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현재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해 볼 시기가 되었다. 국제관계에 음습한 분위기가 일렁이는 21세기 전반기, 이러한 기운이 얼씬도 못 하게, 성숙한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일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지킬 보루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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