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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집합! 공여한도 낮춰”…틈만 나면 꿈틀대는 관치금융의 유혹

[취재후일담]“집합! 공여한도 낮춰”…틈만 나면 꿈틀대는 관치금융의 유혹

기사승인 2021. 09. 2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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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전부 집합! 신용공여 한도를 낮춰 관리하라.”

금융당국의 오랜 관행이 재현되며 증권업계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전날 대형사 중심의 증권사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빚투(빚내서 투자)’에 대한 한도 관리를 주문했다고 합니다. 김동회 금감원 부원장보(금융투자)가 직접 나섰죠. 이날 증권사를 불러 현재 자기자본의 100%까지인 신용공여 한도를 10~20%포인트까지 낮춰 자체 관리를 하라고 지시했다는군요.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신용공여 한도를 줄이라고 말한 것은 맞다”면서도 “정부의 입단속 때문에 자세히 말할 순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논란을 예상했던 걸까요. 금감원은 제발 저리듯 이날 오전 일찍 보도자료를 뿌려 “딱히 10~20%포인트라 제시한 건 아니다”고 해명했습니다. 문제되는, 혹은 문제될 것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발뺌한 겁니다.

금감원의 이 같은 지시는 신용융자가 단기간 급증하면서 반대매매, 개인투자자 위험성 미인지 등 부작용이 속출하자 고심 끝에 나온 것이긴 합니다. 의도 자체야 좋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 시장의 자율 시스템을 거스르는 것 같아 아쉬움이 듭니다. 여전히 일만 터지면 증권사부터 집합시켜 일장훈시하듯 다그치는 모습에 안주하는 것이죠.

금감원의 지나친 개입 사례는 드문 일이 아닙니다. 지난 2019년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부실판매 사태가 터지자, 금감원은 은행과 보험사에 사모펀드와 신탁상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조치했습니다. 당시 소비자에게 투자 위험성을 명확히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말이죠. 하지만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을 제거했다고 일이 해결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되레 다양한 상품을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는 투자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기업의 자율경영 방식에 과한 입김을 작용했다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금감원은 또 최근 NH투자증권에 옵티머스 환매 중단 사태 관련 원금 전액을 배상하라고 권고했는데요. NH투자증권은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라는 판결을 받아들이진 않지만 권고에 따라 투자자에게 원금을 전액 돌려주기로 결정했죠. 투자에 따른 위험 부담을 책임지는 것은 투자의 기본 원칙인데, 금융당국이 과하게 개입하다 보면 금융시장도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투자자에게도 최종적으론 손실일 것입니다. 금융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관치금융이 21세기 현재,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과거 정부가 기업 운영에 간섭하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으나, 이제 세상이 변했습니다. 아니, 변하고 있다고 해야겠죠. 자본시장의 ‘심판’인 금융당국은 플레이어들이 룰을 위반했을 때 휘슬을 불러 그에 마땅한 제재를 주면 됩니다. 심판이 직접 공을 굴리려 하고 감독처럼 이러쿵저러쿵 지시를 내리면 경기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요. 심판은 없는 듯 있어야 하고, 있는 듯 없어야 합니다. 화면에 전혀 드러나지 않다가도 반칙과 함께 등장해 적절한 카드를 꺼내들면 됩니다. 심판은 성공적인 경기 운영의 일부분이지 경기의 지배자는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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