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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美 산업부 눈치보는 반도체 강국

[기자의눈] 美 산업부 눈치보는 반도체 강국

기사승인 2021. 10. 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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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준 (2)
박완준 산업1부 기자
미국이 지난달 24일 3차 반도체 회의를 열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에 3년 치 매출과 원자재·장비 구매현황, 고객정보 등 핵심 정보를 오는 11월 8일까지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은 ‘자발적 제출 요청’이라고 말하면서도 정보를 제출하지 않으면 별도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혀 기업들의 걱정이 큰 상황이다. 미국이 요구한 자료는 대부분 기업 비밀자료로 고객사가 불만을 제기할 경우 계약 철회 같은 경영위기에까지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요구는 누가봐도 지나친 시장개입과 자유무역질서 훼손이다. 하지만 통신 보안을 명목으로 중국의 화웨이 등을 제재한 미국 앞에서 이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간 큰’ 기업은 없다. 더군다나 미국은 우리 반도체 기업의 큰 시장이자 반도체 장비 등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갖췄다. 반도체 산업이 우리 수출의 20%가량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앞장서서 미국의 반도체 영업비밀 요구 문제를 풀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대한 대만의 대응을 보면 우리 정부의 대응 방향도 명확해 보인다. 쿵 밍신 대만 국가발전협의회(NDC) 장관은 미국의 요구에 공식적으로 “TSMC는 고객의 기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으며 고객과 주주의 권리를 위태롭게 하는 관행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칼에 거절했다. TSMC가 하기 어려운 말을 대만 정부가 직접 나서 속 시원히 해준 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관련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전달하는 등 소극적인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무역대표(USTR) 대표와 비공식 양자면담을 통해 거절 의사가 아닌 합의점을 찾겠다고 밝혔다. 업계는 정부가 미국 눈치를 살피느라 공식적인 발표나 자리를 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강국’의 ‘약한 외교력’을 드러내는 아쉬운 대목이다. ‘우리나라 산업부가 미국 소속이냐’는 비판과 함께 갑을 관계가 이미 형성됐다는 비판도 정치권에서 나온다.

잘못 낀 첫 단추는 다시 제대로 채우면 된다. 하지만 잘못 낀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단추를 계속 채우면 되돌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반도체는 국익과 직결되는 문제다. 정부는 이번 사안에 어떻게 대응해야 반도체 강국 위상에 걸맞은 외교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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