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태원 대표의 발인이 26일 오전 유족과 영화인 동료들의 애도 속에 엄수됐으며, 장지는 분당메모리얼파크다.
고인은 지난해 5월 낙상사고를 당한 뒤 약 1년 7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아오다 지난 24일 세상을 떠났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고인과 영화의 동반자였던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을 비롯해 안성기·최민식·조승우·신현준 등이 조문했다.
고인은 1959년 첫 영화 ‘유정천리’를 제작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후 1973년에 경기도 의정부 소재 빌딩을 인수하며 그 안에 있던 극장을 운영하며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고, 1984년에는 부도 직전의 태창영화사를 인수해 태흥영화사를 설립하며 다시 영화제작에도 나섰다. 이후 ‘장군의 아들’ ‘서편제’ ‘태백산맥’ ‘창’ ‘젊은날의 초상’ 등 한국 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품들을 제작했다.
이 대표가 제작한 영화들은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로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춘향뎐’(2000)으로 한국영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했으며 ‘취화선’(2002)으로는 한국인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후 1988년 한국영화업협동조합 이사장을 시작으로 1994~1997년에는 한국영화제작자협회 회장을, 1998년에는 스크린쿼터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영화계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은관문화훈장, 2003년 백상예술대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