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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조락과 낙엽, 소멸의 상징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조락과 낙엽, 소멸의 상징

기사승인 2021. 11. 0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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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늦가을이 되면 온대지역의 활엽수는 겨울을 대비하여 잎자루 끝에 떨켜를 만든다. 그러면 나뭇잎은 나무로부터 수분을 공급받지 못하여 광합성을 행하던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다른 색소들이 나타나거나 새로운 색소들이 만들어져 단풍이 든다. 이와 함께 건조해진 날씨에 잎들이 바짝 말라 가랑잎이 된다. 그때 잎들은 미풍만 불어도 우수수 져 낙엽으로 땅 위에 쌓이게 된다. 이것이 늦가을의 활엽수의 잎들에 일어나는 조락(凋落)이라는 운명이다.

낙엽이 된 가랑잎들은 길가나 빈터에 수북이 쌓여 행인들에게 밟혀 바스락거리며 부스러지거나 찬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가 종당에는 자취를 감춘다. 그런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우수와 비애를 일으킨다. 초봄에는 황금빛으로 빛났고, 한봄에는 연초록으로 싱그러웠고, 여름에는 진초록으로 무성했고, 늦가을에는 형형색색으로 화려했으나, 이제 그 모든 영광의 시절은 가고 잎들은 결국 볼품없는 가랑잎이 되어 밟히거나 바람에 날려 다니다가 사라진다. 이런 모습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을 포함하여 아무리 젊고 싱싱하고 화려했던 것일지라도 결국은 모두 조만간 늙고 볼품없이 되어 소멸하고 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늦가을 활엽수의 나뭇잎에 일어나는 조락은 자연스레 사람들에게 소멸, 상실, 죽음, 사라짐, 헤어짐과 같은 인식과 감성을 일으킨다. 그래서 나뭇잎들의 조락이나 낙엽은 소멸과 죽음에 대한 은유나 상징이 된다. 그런데 생명체의 소멸이나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슬픈 일이기도 하다. 나무에서 떨어지거나 땅 위에서 바스락거리거나 바람에 이리저리 나뒹구는 낙엽은 소멸이나 죽음을 상기시키고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우수와 비애의 감정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 무렵 냇 킹 코울이나 이브 몽땅의 〈고엽(枯葉)〉이라는 노래가 심금을 울리는 이유다.

물론 가을에 우수와 비애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 낙엽만은 아니다. 가을은 약해지는 햇빛, 짧아지는 낮의 길이, 찬 바람이 몰고 오는 숙살지기(肅殺之氣), 처량한 풀벌레 소리, 추수 뒤의 공허,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와 갈대 등으로 대표되는 그 특유의 날씨와 물상으로도 사람들에게 비애와 우수의 감정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들이 일으키는 우수와 비애의 감정에는 까닭이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나뭇잎의 조락과 나뒹구는 낙엽이 사람들에게 일으키는 우수와 비애의 감정은 낙엽이 소멸이나 죽음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그 까닭이 분명하다.

낙엽은 또 우리에게 때가 되면 생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미련 없이 이승을 떠나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나뭇잎은 가을이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조락하여 낙엽으로 쌓였다가 사라진다. 우리 또한 언젠가는 이승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승과의 하직은 언젠가는 있게 될 일이며 그때가 닥치면 슬프나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따라야 함을 낙엽은 우리에게 매해 시연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무언(無言)의 가르침에 감사해야 한다.

더 나아가, 나뭇잎의 조락이나 낙엽을 소멸이 아닌 새로운 탄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낙엽은 결국 썩어 흙에 섞이어 나무의 양분으로 흡수됨으로써 새로운 잎으로 탄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낙엽귀근(落葉歸根: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생명은 순환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잎은 소멸하되 새로운 잎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또는 어린 자식은 나이 먹은 부모에게서 태어나듯, 새로운 생명은 낡은 생명에서 태어난다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낙엽은 소멸만의 상징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탄생의 상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쉽고 슬픈 일이지만,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소멸한다. 낙엽은 해마다 우리에게 그 사실을 일깨우며 우리를 우수와 비애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낙엽은 우리의 소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심지어는 소멸은 새로운 탄생임도 일깨워준다. 조락과 낙엽은 소멸에서 탄생이 비롯됨을 일깨우는 변증법적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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