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노후자금을 책임지고 있는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올해 9월말 기준 국민연금 곳간에는 919조원이 쌓여있으며, 이는 세계 3대 연기금에 속하는 규모다. 국민연금은 이 중 18.4%에 달하는 169조5000억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 무소불위의 막강함을 행사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운영진은 대부분 정부 인사 또는 시민단체 이해관계자들로 구성돼 있어 아이러니함을 자아낸다.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로만 구성해도 모자랄 판에 수익률은 뒷전인 채 이해관계 다툼으로 피투자 기업에 심각한 경영 개입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경영권 침해로도 이어졌다. 지난 2019년 기금운영위원회(기금위) 위원장이었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땅콩회항, 갑질폭행, 탈세 의혹 등을 이유로 조양호 전 회장 연임안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해 조 전 회장의 연임을 막았다. 국민연금이 경영권에 개입하면 민간기업의 지배구조를 흔들 수 있단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국민연금이 독립성을 확보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기업 고유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이 같은 움직임이 계속 되면 자칫 정부의 ‘기업 길들이기’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칫 국민연금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도 자구책으로 기금위 산하에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를 두고 수탁자책임활동 관련 사항을 위임했지만, 이 수책위도 노동 단체 등 각계 단체의 추천을 받은 위원으로 구성되다 보니 해당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이젠 정부 인사나 각계 대표가 아닌 실제 자산운용 등의 경험이 있는 실무자 중심의 전문가로 기금위를 구성해 정치적 이해관계를 배제시켜야 할 때다. 또 정부도 연금 제도의 운영을 전담하되 기금운용에 대해서는 사후적인 보고를 통한 감독만 실시해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