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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 인류문화 담은 도서관이자 클라우드 서비스”

“팔만대장경, 인류문화 담은 도서관이자 클라우드 서비스”

기사승인 2022. 05. 1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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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해인사 대장경연구원 보존국장 일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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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내부에 보관된 고려 팔만대장경 모습. 해인사 대장경연구원 보존국장 일한 스님은 지난 12일 소수에게만 공개되는 대장경을 직접 보여주고 관련 설명을 했다./사진=황의중 기자
경남 합천 해인사는 법보사찰(法寶寺刹)로 불린다. 고려시대 제작된 팔만 개 이상의 대장경(大藏經) 목판을 보존하고 있어서다. 대량으로 인쇄본을 찍어낼 수 있는 목판 대장경은 고려 외에 송·요·금나라 등 당시 다른 나라도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유일하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한국을 뛰어넘어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 인류 문화와 역사가 담긴 일종의 ‘도서관’이자 당대의 ‘클라우드(Cloud) 서비스’였다. 인도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 동북아, 동남아를 거쳐 간 불교 문헌은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특정 경전이나 기록이 중간에 사라질 경우 다른 곳의 대장경 원판을 통해 비교 검증하고 문헌을 보충했다. 이는 온전하게 보존된 대장경이 당대에 한 개라도 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조선시대 일본 사신들은 팔만대장경 원판을 가져가지 못하자 수시로 찾아와 인경본(인쇄한 책)을 구해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장경은 경장(經藏·석가모니 설법 모음)·율장(律藏·계율 모음)·논장(論藏·경장, 율장의 주석과 해석) 등 삼장(三藏)을 말한다. 특히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일종의 목차와 보유 문헌을 알려주는 대장목록·보유목록 경판을 포함한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들은 이 목록 경판의 내용을 바탕으로 대장경을 다시 펴내고 연구할 수 있었다. 팔만대장경은 17세기 이후에도 동아시아 한역대장경의 조성 과정에서 핵심적인 원천 텍스트가 됐다. 일본 신수대장경(1912∼1925)도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근간으로 만들어졌다.

지난주 해인사에서 만난 대장경연구원 보존국장 일한 스님은 이런 대장경의 가치를 대중들이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대장경을 보관하는 장소인 해인사 장경판전이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했다며 기후변화 문제를 환경에만 국한하지 말고 문화재와 연결해서도 봐달라고 부탁했다. 다음은 일한 스님과 일문일답이다.

-당시 국교였던 불교의 힘을 빌려 몽고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팔만대장경이 제작됐다는 정도는 일반인들도 알고 있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가

“일반인들이 교과과정에서 배웠던 ‘외침을 부처님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내용은 틀린 말이 아니다. 대장경판 조성을 발원한 고려의 문신 이규보 선생의 ‘대장각판 군신기고문’에는 적을 무찌르기 위한 진병(鎭兵)대장경이라고 그 성격이 기록돼 있다. 팔만대장경은 우리 민족이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모아 완성한 기적과도 같은 결과물이다. 따라서 한민족의 평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목판인쇄술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문화재이기도 하다. 또 대장경은 불교문화와 역사가 담긴 도서관이다. 일종의 불교를 매개로 한 그 시대의 역사가 담긴 기록인데, 이게 요즘 말로 클라우드 서비스 역할을 했다. 나라마다 전승된 저작들이 서로 퍼지면서 유실된 기록은 다른 나라의 대장경을 통해 보충하고, 다시 남은 대장경이 후대 대장경을 만드는 데 밑바탕이 되면서 기록이 유구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현재는 한국·일본·대만 인터넷을 통해 자기 나라 언어로 대장경 안에 문헌을 바로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유일하게 온전한 대장경 목판이 남은 곳은 해인사뿐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전승된 불교 경전들을 판단할 기준이 되는 원본 데이터인 셈이다.”

-팔만대장경 제작에는 막대한 재원과 노력이 들어간 것 같다. 제작 과정의 노력과 제작 과정에서 당시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나.

“팔만대장경은 지금처럼 모든 것이 풍족한 시절에 만들어도 쉽지 않을 역작(力作)이다. 구양순 서체로 목판마다 거의 같은 수준으로 새겼다. 추사 김정희가 보고 그 서체의 정밀함에 놀랬을 정도였다. 작업자들이 경판에 한자, 한자 새길 때마다 매번 절을 올렸다는 어른 스님들의 이야기가 그냥 전해지는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아쉽게도 팔만대장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해인사로 오게 됐는지 등을 후세에 전하는 기록은 거의 없다. 조선 태조실록에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오는 과정이 기록돼 있는 정도다. 대장경 규모나 양질의 목재가 필요한 것 등을 고려할 때 국가적인 역량이 동원돼 여러 곳에서 동시에 제작돼 강화도에 보관됐던 것 같다.”

-팔만대장경 보존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팔만대장경은 나무로 만들어진 목판이다. 따라서 어쩔 수 없는 물질적인 한계가 있다. 팔만대장경을 조성할 당시 단단한 나무를 사용해 경판을 만들었다. 경판의 손잡이 역할을 하는 ‘마구리’는 경판보다 두껍게 만들어 경판을 보관할 때 경판끼리 부딪쳐 손상되지 않게 했다. 혹시 모를 나무의 뒤틀림도 일부 방지하는 역할을 하도록 고안됐다. 여기에 장경판전의 과학적인 설계와 가야산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통풍을 도와 경판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다만 전 세계적인 문제인 기후변화로 인해 주변의 환경이 점차 변하고 있다. 이 기후변화가 문화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가 많은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목조문화재가 상당한 우리나라의 사정을 고려해 기후변화를 논할 때 문화재의 보존 관점에서도 생각을 해주길 바란다. 아울러 정부가 유사시 문화재 보수나 복원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문화재 기록화에 대해서 조금 더 힘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전통문화산업을 함께 육성할 수 있는 인경, 대장경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 육성 등도 필요하다.”

-팔만대장경은 훌륭한 문화유산인 동시에 불교의 보물이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

“해인사는 802년 창건 후 현재까지 수많은 화재로 큰 피해를 봤다. 이 가운데 7차례의 대화재로 큰법당인 대적광전까지 모두 불타버리는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이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만큼은 불길에 휩싸이지 않고 현재까지 잘 보존돼 내려오고 있다. 물론 당시 스님들께서 장경판전만큼은 혹은 대장경만큼은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필사적으로 불을 막았겠지만 대적광전이 불타는 상황 속에서 장경판전이 불에 휩싸이지 않은 것은 가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신기하게 산속 건물임에도 장견판전은 쥐가 파먹거나, 새가 둥지를 틀거나 하는 일이 없다. 한옥은 잠시만 사람이 살지 않으면 거미줄이 많이 생기는 데 장경판전 천장에는 거미줄 하나 없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해인사 장경판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재 해인사는 홈페이지 신청을 통해 장경판전 안에 있는 대장경을 일반인에게 공개한다.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두 차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해인사를 안내하고 장경판전에 직접 들어가서 문화재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선 공개하지 않는 게 맞지만, 문화재는 알려야 대중들이 가치 있게 생각한다고 판단했다. 해인사 입장에선 어려운 결정을 한 셈이다. 종교를 떠나 인류 전체의 지혜가 담긴 문화유산이니 소중하게 관람하고 아껴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6·25 전란 때도 해인사 장경판전 폭격 명령을 거부한 김영환 장군 같은 분들의 희생으로 팔만대장경이 천년 넘게 무사히 전해 내려올 수 있었다. 오늘 우리도 후대에 그대로 물려줘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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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팔만대장경은 판각에 새겨진 정밀하고 아름다운 글씨체로 유명하다. 대장경연구소 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팔만대장경 중 임의로 경판 하나를 꺼내봤다./사진=황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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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을 보존하는 건물인 장경판전 천장에는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 아님에도 거미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특별한 청소 행위 없이도 깨끗하게 보존된 건물 천장과 경판 모습/사진=황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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