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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관사, 그 ‘후진국 형 예우’

[칼럼] 관사, 그 ‘후진국 형 예우’

기사승인 2022. 06. 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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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대기자
문재인 정부 때 행정안전부 고위 공무원으로 있다 퇴직한 인사의 하소연이다. “정부가 왜 이렇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매몰돼 있는지 모르겠다. 행안부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갑작스레 정규직이 되면서 일상이 깨졌다. 이전에는 한 명의 사무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면 지금은 예닐곱 정도 되는 직원들로부터 보고를 받느라 업무 능률이 떨어지고 혼선이 생긴다. 언론은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문제를 부각시키지 않는가.”

그분의 지적은 정부의 비대화와 그 부작용을 현장 경험을 통해 우려한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면서 덩달아 몸집을 키운 공공 부문과도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문 정부 들어 정부는 물론이고 공공 부문의 임직원 수가 크게 증가해 다음 세대에 중압감을 주고 있음은 틀리지 않다. 공공 부문의 비대화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국민의 눈에는 쉽게 띄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전국에 산재한 관사로 눈길을 돌리면 생각해 볼 게 많다. 청와대 개방으로 관사 실태가 또다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사람이 아닌 건물도 윤석열 정부의 구조조정 칼날을 피해 갈 수 없게 됐다. 이미 민선 8기 광역지방자치단체장 당선인 17명 가운데 13명이 관사 사용 대신 자택 출퇴근 채비를 갖추고 있단다. 발 빠르다. ‘권위주의 상징 폐지’와 ‘예산 절감’ 등이 그 이유다. 


사실 관사라는 게 권위주의의 잔재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여기에 더해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택과 관청을 오가기에는 불편했던 과거 교통망에 대해 예우 등을 이유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대도시에는 지하철 망이 거미줄처럼 갖춰져 있고 지방의 경우도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교통망이 촘촘하다. 승용차 보급이 급속도로 증가해 관사의 존재 의미 자체가 오래전 상실됐다고 봐야 한다. 


특히 어이가 없는 것은 청와대 개방으로 드러난 서울 삼청동 헌법재판소장 관사다. 청와대 뒷길 등산로 개방으로 소음 등이 우려된다면서 등산로를 차단한 헌재 측의 처사는 이해하기 힘들다. 헌재소장 관사는 대지 850평, 임야 2578평 건축 연면적 290평의 엄청난 규모다. 청와대가 개방되지 않았다면 이런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헌재 관사는 외교통상부 장관 관사처럼 외국 주요 인사 방문이 수시로 있는 곳도 아니다. 단지 국가 의전서열 4위라는 이유만으로 ‘과잉 예우’를 받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사정이 이쯤 되면 헌재소장 스스로 솔선수범의 자세로 관사를 황급히 떠나는 게 맞지 않을까. 습한 장마를 앞두고 있는 지금 수많은 직장인들이 땀 흘려가면서 출퇴근을 하고 있음을 알고나 있을까. ‘관사 재테크’까지 하고 있다면 그 부분도 이 기회에 정리하는 게 옳다. 굳게 닫힌 철문 안에서 헌재소장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국민과 세상과 법을 대하고 있을까. 


먼 거리 직장을 선택한 기관장은 자신의 비용으로 주거비를 충당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해 고른 자리이기에 국가나 지자체 예산으로 주거비용을 마련해 주면 안 된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는 권위주의를 매서운 눈으로 늘 바라보고 있고 비효율적인 제도나 관습에 주저 없이 반기를 들고 있지 않은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해외 출장길 항공기 퍼스트클래스를 예약하지 말라고 한 것이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자전거를 타고 국회 의사당 구내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이 이제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후진국형 예우’의 상징인 관사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언제일까 손꼽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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