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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변호사시험 CBT 도입, 업(業)의 본질 집중하는 계기 되기를

[칼럼] 변호사시험 CBT 도입, 업(業)의 본질 집중하는 계기 되기를

기사승인 2022. 08. 1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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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변호사
김민규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교육이사·카이스트 문술대학원 겸직교수
"답안지에 한자를 섞어 쓰면 가점을 준대", "목차 정도는 한자로 적어야 한다더라"

법대생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한자어가 많은 법률 용어의 특성이 반영된 현상이지만, 법조인 양성 체제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으로 바뀐 지 13년이 지나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법률 용어를 한자로 쓰면 귀하고, 한글로 쓰면 천한가.

다층적 의미를 품고 있는 언어의 심층을 궁구하고 정확한 용법을 익힌다는 차원에서 한문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당연히 권장해야 한다. 그러나 지식은 쉽게 권력으로 치환된다. 공부의 본질을 벗어나 한자를 쓴다는 것, 한자를 안다는 것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토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자 사용이 자신의 지적 권위를 뽐내는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차라리 사용하지 않는 것이 낫다.

우리나라에서 법조인은 독특한 사회적 포지션을 갖고 있다. 단순한 직업을 넘어 과거 선비(士) 계층의 후신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젊은 검사나 판사를 향해 '영감(令監)'이라 부르는 일이 어색하지 않았다. 영감은 조선시대 정3품 이상 당상관을 부르는 존칭이다. 정2품 이상은 대감, 임금은 상감이라고 불렀다. 법원·검찰을 '재조', 변호사 업계를 '재야'로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과거에는 사법시험 문제를 두루마리에 적어 마치 방(榜)처럼 풀어서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모두 고시 합격을 과거 합격과 동일선상에 놓고 판단하면서 생긴 잔재다. 앞서 말한 한자어 사용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봉건적 유습은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었다. 직업에 신분적 의미를 부여하는 그릇된 관행이 없어지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 맡은 역할이 다를 뿐이다. 특정 직업이나 역할에 불필요한 계급적 의식을 투사하는 것은 불요불급(不要不急)하며, 이러한 맥락을 함축하는 인습과 문화도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나아가 법조계는 이제 변호사시험을 컴퓨터로 치르는 방안까지 모색 중이다. 지난 7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지시로 논의가 촉발됐으며 법무부와 대한변협,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인 CBT 도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4일간 치르는 변호사시험에서 '손글씨'는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A4 용지 기준으로 총 64면을 써야 하는데, 컴퓨터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실무에서도 손글씨를 쓸 일이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의 시험들은 CBT 도입에 인색했다. 기층 정서에 "모름지기 법조인이라면" 내지 "모름지기 관료가 되려면" 같은 '꼰대 마인드'가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CBT 방식의 시험은 여러모로 효과적이다. 우선 수험생들은 정서된 답안을 빠르게 작성할 수 있고, 악필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평가자 입장에서도 깔끔하게 현출된 답안지를 보게 되므로, 내용과 논리 전개에 집중할 수 있다. 따라서 채점이 더 공정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수험생의 글씨체는 법조인으로서의 업(業)의 본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실무에서도 서체를 운운하며 힐난하는 사람은 없다. 서예를 통해 심근을 단련하고 기상을 연마하는 것은 개인적 취미에 불과할 뿐, 법조인 모두가 함양하고 담지해야 할 근본적인 무언가가 아니다. 오히려 법조인이라면 겉으로는 식자연하면서 뒤로는 약자를 착취하고, 하대하는 위선을 경계해야 한다.

변호사시험에서의 CBT 도입이 예비 법조인과 채점을 맡은 교수들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성공적인 제도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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