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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칼럼] 침략 및 식민 지배의 합리화

[이효성 칼럼] 침략 및 식민 지배의 합리화

기사승인 2022. 10. 2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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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본지 자문위원장_전 방송통신위원장2
아시아투데이 주필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 열강들은 해외에서 자원과 인력을 착취하고 부를 쌓기 위해 앞다투어 세계 곳곳에서 많은 지역과 나라들을 침탈했다. 그들이 침탈한 곳에는 그곳의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방식대로 잘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양심의 거리낌을 해소하려는 듯 그들은 피식민지의 미개와 야만성을 들먹이고 자신들의 침략과 식민정책을 피할 수 없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으로 강변하며, 자신들의 행위가 마치 식민지의 개화와 진보를 위한 것인 양 합리화했다. 그러나 이런 합리화는 이솝 우화의 하나인 〈늑대와 어린 양〉의 교훈대로 전제자의 전제에 대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일본은 섬나라여서 밀려드는 서세를 일찍 감지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기치로 한국이나 중국보다 먼저 서양의 문물을 배워서 서구 열강을 흉내 냈다. 일본은 서구 열강의 침략과 식민지 정책은 물론 그에 대한 그들의 합리화까지도 모방했다. 그러나 서구의 주권재민사상이나 삼권분립 제도는커녕 유교의 민본 사상조차 경험하지 못한 일본은 국내에서는 철저한 전제를 실시하면서 식민지에서는 서구 열강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악랄한 침탈을 자행했다.

일본이 제국주의의 일원이 되어 내부 독재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수단으로 그리고 부국강병을 위해 침탈의 대상으로 삼은 첫 번째 나라는 한국이었다. 일제는 정한론(征韓論)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먼저 조선과 조선인을 폄하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이 떠받드는 일제의 대표적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는 이런 억지 논리를 폈다. "한민족의 민족성은 강자에 대해서는 굴종적이고 약자에 대해서는 그 반대이며, 거기서 그들의 부리비도(不理非道)의 악질적인 행동이 나왔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게 된 것도 반도인의 그러한 심리가 악질 행동으로 나타난 데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는 1921년 조선통치를 위한 참고서로 단행본 《조선인》을 간행했다. 저자는 한국에서 식민통치에 적극 협조한 어용 관학자 다카하시 도루였다. 그에 따르면 조선인의 대표적인 특성인 사상의 고착성과 종속성은 "조선인이 조선반도에 사는 한 영원히 지속될 것"이지만, 형식주의, 심미 관념의 결핍, 문약, 당파심, 공사 혼동이라는 조선인의 또 다른 나쁜 특성은 "일본의 통치가 해를 거듭하며 점차 사라질 것"이며 이에 "일본인은 조선인이 지금까지 악정에 시달린 결과 길러진 어두운 성질을 선정과 우수한 일본 민족의 감화로 씻어내어 일본인에게 동화시키는 동시에, 조선민족을 향상시킬 의무를 자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위대한 스승'으로 불리며 처음에는 조선에 비교적 온건했던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문명 개화론자도 나중에는 정한론을 합리화했다. "조선의 인민을 위하여 조선은 멸망하여야 한다. 인민의 생명도 재산도 지켜주지 못하고 독립 국가로서 자존심도 지키지 못하는 그런 나라는 멸망하는 것만이 조선 백성들을 속박에서 풀어줄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일본의 우익들은 이런 자기기만적 인식의 바탕 위에서 일제의 한국 식민지배는 한국인이 미개하고 열등하며 조선 왕조가 무능하였기 때문이고, 일본은 그런 한국의 식민 지배를 통해 한국의 문명화와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합리화한다. 전형적인 전제자의 변명이며 적반하장의 궤변이다.

문제는 이런 변명과 궤변을 사실로 믿는 이들이 우리 내부에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해방 후 80년이 거의 다 되도록 일제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탓이다. 아직도 우리의 강단 사학계는 친일 식민사학자들이 장악하고 있고, 우리 정치권은 친일 인사들이 중요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과 올바른 역사 교육을 통해 우리의 의식과 역사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를 말끔히 청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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