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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칼럼]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은 이제 주요 강대국인가?

[강성학 칼럼]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은 이제 주요 강대국인가?

기사승인 2022. 12. 2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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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인터뷰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사람 팔자 알 수 없다"는 한국의 옛 속담을 국가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면 국가의 팔자도 알 수 없다. 대한민국은 건국 직후 재앙적 전쟁의 참화를 겪은 후에 세계의 최빈국에서 후진국, 발전도상국, 중진국을 거처 마침내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현재 38개국의 선진 회원국을 가진 OECD에 한국은 1996년 29번째로 회원국이 된 지도 거의 30년이 되어간다. 대한민국은 팔자를 고쳐 이제 명실공히 선진국이 되었다. 이런 세계사적 성취는 어느 날 갑자기 청천에 날벼락처럼 찾아온 것이거나 어느 날 불현듯 로또에 당첨되어 백일몽 같은 소망이 달성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일생인 70여 년에 걸친 대한민국의 선구적 지도자들과 근면한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과 고난의 오디세이의 결실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해서 동시에 국제정치의 주요 강대국이 된 것은 아니다. 국제정치에서 선진국이 곧 강대국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강대국이지만 그들이 선진국이 아닌 것처럼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벨기에, 네덜란드, 그리고 이스라엘 등을 포함하는 OECD회원국 모두가 강대국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존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빛나는 역사적 업적을 보유해야 하고, 또한 현실적으로는 타국의 지원이 없이도 독자적으로 장기간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충분히 강력한 무장과 전쟁수행을 뒷받침할 자족적인 국가적 다양한 자산을 넉넉하게 보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지금도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목격하고 있듯이 홀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러시아는 분명 강대국이고 여러 타국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분명히 강대국이 아니다. 러시아는 전쟁에서 설사 패배하는 경우에도 여전히 강대국으로 남지만, 약소국 우크라이나는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바로 강대국으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소인(Lilliput)은 한번 쓰러지면 그것으로 끝장이 나지만 거인(Giant)은 잠시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면 여전히 거인인 것과 같은 경우라고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유엔의 도움으로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마치 한 마리의 불사조처럼 비상하였다. 그 후 한미동맹체제의 덕택으로 안전 속에서 경제발전을 거듭한 끝에 제2차 세계대전 후 탄생한 신생국가들 중 유일하게 마침내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이것은 세계사적 사건이고 인류 역사상 하나의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은 강대국으로 인정받을 만한 빛나는 승전의 경험이 없고 장기간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해 나갈 만큼 국가적 자산에서 충분히 자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 강대국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선진국이고, 더구나 최근 특정 무기들마저 대량 수출국이 되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강대국 증후군(great power syndrome)'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오만(hubris)'을 낳고 오만은 자멸을 가져오는 것이 세계사의 엄중한 교훈이다.

현재 우리의 처지와 비슷하게 일찍이 '강대국 증후군'에 젖어 행동한 소중한 역사적 사례가 주는 유익한 교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필자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의 경우라고 생각한다. 1919년 파리평화회의에서 이탈리아의 오를란도 수상은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서방 측에 늦게 가담했지만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한 채 '깨끗한 손'이었지만 결국 '빈손'으로 귀국하자 이탈리아는 불만으로 들끓었다. 이 불만을 이용하여 1922년 베니토 무솔리니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분노에 물들고 현대의 카이사르가 되려는 과대망상에 빠진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진정한 군사적 및 경제적 취약점을 반영하는 대외정책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이탈리아의 자산부족과 거대한 군사력을 공급할 수 없는 자국의 제한된 목적의 외교정책을 정교하게 수립하지 못했다.

소수의 아첨꾼들 속에 고립된 무솔리니는 자신의 직감력을 믿었고 또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없다고 확신했다.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유럽의 국제정치에서 소위 균형자의 역할을 꿈꾸었지만 그러나 그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만한 세련된 리더십과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국제적 균형자의 역할을 시도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히틀러의 독일에 편승하는 것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의 어리석은 선택은 궁극적으로 국가의 생존을 희생시키고 파시스트 정권과 자신의 정치적 지위는 물론 자신의 생명까지 잃고 마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에서 배운다면, 대한민국은 지난 문재인 정권처럼 북한에 '선제적 굴종'을 계속하면서도 무슨 동아시아의 균형자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나설 일이 아니었다. 북한과 중국에 굴종하는 국가를 누가 균형자로 인정하겠는가? 한국인들에게 그런 특권적인 국제적 지위와 역할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주어질 것 같지 않다. 격랑의 국제정치의 파도 속에서 대한민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동맹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 동맹국인 미국과는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주니어 파트너라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한미동맹체제는, 한국전쟁의 과정에서 세계최강의 미국에게 편승한 이승만 대통령의 선구자적 결단은 참으로 민족사적 최선의 결정이었다. 당시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조약 체결에 아주 미온적이었다. 당시 한미동맹은 미국에 의한 한국의 일방적 보호를 보장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동북아의 지정학적 조건이 근본적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소중하게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진정한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국방력과 외교력을 향상시키는 데 조용히 매진해야 할 것이다. 강대국의 지위는 잘사는 국가라고 해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강대국으로 인정받고 싶은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그러한 지위를 스스로 쟁취해야 하고 또 기존 강대국들에게 그들 중 하나임을 실제로 입증해야만 한다. 따라서 벌써부터 오만하게, 아니 가소롭게, 강대국 증후군에 전염되어 대한민국이 이제는 강대국이 되었다고 샴페인을 터트리는 어리석은 국제적 돈키호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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