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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꽉 막힌 ‘퇴거 대출’에 발 동동…전세환란 속 사각지대 놓인 임대인

[취재후일담]꽉 막힌 ‘퇴거 대출’에 발 동동…전세환란 속 사각지대 놓인 임대인

기사승인 2023. 01. 0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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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국[반명함] 사진 파일
요즘 전세시장은 불안하다 못해 환란의 시기에 들어선 모습입니다. 높은 인플레이션 우려에 금리가 치솟자 부동산가격이 급락하고,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높은 '깡통전세'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전세시장 불안정은 세입자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속칭 '빌라왕'식 전세사기로 인해 보증금을 떼인 세입자들이 급증했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세금반환보증보험 가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떼인 규모는 지난해 11월까지 9854억원으로, 2021년과 비교해 2배에 달합니다.

이 때문에 정부와 국회도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 마련에 두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지난달 말 국세보다 임차보증금을 우선 보호하도록 하는 국세기본법이 개정됐습니다. 이외에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세입자 보호 법안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입니다.

하지만 전세사기 이슈가 들끓는 지금, 정작 집 한 채 가지고 있는 임대인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대인들은 최근 역전세난(전세가격 급락으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으로 거액의 보증금을 마련해야 하지만, 금융자산이 없는 데다 은행 대출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 강남에 아파트 한 채를 전세주고 있는 직장인 A씨는 1개월 전 전세계약을 갱신한 세입자가 갑작스레 보증금 반환을 요구해, 난처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새로운 세입자를 구한다고 해도 이미 전세가격이 2억원 가까이 떨어져 이를 새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A씨는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을 빌리기 위해 은행과 보험사, 저축은행 등 1·2금융권을 모두 찾았으나, 거절됐습니다. 이미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다 찼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A씨에게 남은 건 은행 이자만큼의 돈을 매달 월세로 세입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방법뿐입니다. 이마저도 어려워지면 직장생활 20년만에 겨우 마련한 집 한 채가 경매에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임대인들이 원활하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도록 DSR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DSR은 과도하게 빚을 내 부동산에 과잉 투자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인데, 전세보증금 반환 용도로만 쓸 수 있는 전세퇴거자금대출까지 DSR을 적용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인 측면이 있다"며 "전세보증금 반환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이 시점에 전세퇴거자금대출까지 막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뇌관이 되고 있는 만큼, DSR 규제 완화는 검토하지 않겠다는 방침입니다. 부동산 규제를 푼 상황에서 DSR마저 풀게 되면 가계의 채무상환 부담을 키우고 부동산시장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정부 실책으로 불거진 전세시장 불안에 대한 책임을 집주인들에게만 지우는 게 아닐까요. 전세퇴거자금대출에 한해 일시적으로 DSR 규제를 완화하는 건 임대인들에게 퇴로를 마련해주고, 세입자들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정책이 아닌지 정책 당국자들도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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