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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가 노예인가” 외친 김평우 변호사

[칼럼] “우리가 노예인가” 외친 김평우 변호사

기사승인 2017. 03. 02.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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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탄핵정국에서 뉴스의 초점은 단연 김평우 변호사(72)다.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아들로 서울대 법대 수석졸업을 하고 대한변협회장을 지낸 원로 법조인인 그는 유력신문들에서 실어주지 않는 글들을 조갑제닷컴에 싣고 이 글들을 모아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탄핵을 탄핵한다"는 책을 썼다. 또 그는 다른 법조계 원로 여덟 분들과 함께 탄핵과정의 위헌성을 유력신문 1면 하단에 광고를 내더니, 이제는 대통령 대리인의 한 사람으로 헌법 교과서에 실릴 명변론을 남겼다. 최근 태극기 집회에 참가해 거침없이 소신을 밝히고 있다.
 

그가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 측 변호사로서 헌재 탄핵심판 주심 강일원 재판관에게 "국회 수석 대리인" 같다고 비판하면서다. 변호사는 대개 판사의 비위를 맞추기 바쁜데 이렇게 일갈했다. 이를 두고 아시아투데이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은 그가 막말을 했다고 썼다. 그렇지만 2월 22일자 변론 전체를 보면 그가 강 주심이 심판이 아니라 마치 선수처럼 국회를 지원한 행위를 두고 한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는 강 주심은 국회의 자율권이란 이름으로 일괄투표, 소위 '섞어찌개'식 죄목들의 합성 등 탄핵소추 표결과정상의 중대한 결함들에 대해 아예 다툴 수 없도록 했고, 탄핵소추안을 실질적으로 다시 쓰게 했으며, 심지어 증거 채택에 있어 일종의 '카더라'식 전문(傳聞)도 채택되게 하는 규칙을 자의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회가 대통령 탄핵을 의결하면 재판을 받기 이전에 직무가 정지된다. 따라서 국회가 재판에 버금갈 정도로 구체적인 헌법의 위반과 법률의 위반을 적시하고 엄격한 증거를 근거로 해서 적법 절차를 밟아서 탄핵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회는 최순실에 대한 언론보도 등을 바탕으로 평등, 보통, 비밀선거에 의해 유권자 1500만명 이상이 지지한 대통령을 조선시대에나 있는 연좌제로 걸어 끌어내리려 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선거를 통해 평화로운 정권교제를 하는 게 원칙인데, 선거가 아니라 적법절차를 무시한 탄핵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리려 했기 때문에 이것은 속임수 탄핵인데, 탄핵소추과정의 절차를 심판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헌재가 이런 속임수 탄핵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2월 22일 변론에서 이와 관련해서 국회 권성동 탄핵소추단장, 강일원 주심, 이정미 헌재소장대행에 대해 37개 질문을 제기했지만 그들이 답변했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했다. 헌재는 최종변론일을 2월 27일로 정해 모든 변론 절차를 종료시켰다. 이제 헌재의 최종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치를 내세우면서 가장 법치를 소중히 여기는 법조인의 한 사람인 김평우 변호사를 비판하는 묘한 역설적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법과 제도에 따라 탄핵절차를 밟았고 이제 헌재의 결정대로 따르는" 게 법치인데 왜 김 변호사가 "지금이 조선시대냐, 우리가 노예냐"면서 헌재의 결정에 불복하려는 모습을 보이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헌재의 심판으로 대통령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법치를 뿌리내리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런 비판은 핵심을 벗어났다. 김 변호사가 "우리가 노예냐?"고 반문하는 이유는 바로 탄핵소추와 헌재의 심판과정이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회와 헌재가 법치를 무너지게 하고 있는데, 이런 판결에 조용히 따르라니 우리가 노예냐는 반문이다. 이는 자유로운 시민에게 권할 바가 아니며 진정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오히려 이런 속임수 탄핵과정과 면죄부 헌재에 분노할 줄 아는 시민들이 있어야 비로소 뿌리를 내린다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 헌재도 법 위에 군림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국회의 속임수 탄핵과 헌재의 면죄부 발부가 정의로웠는지 논하지 않으면서 그를 법치주의의 적(敵)으로 간주할 수 없다. 역사의 현장에서의 그의 활발한 언행은 분명히 청사(靑史)에 기록될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나라 법치주의가 한 단계 도약할 것이다. 평생 법을 다룬 헌재 재판관들도 이런 역사적 의미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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