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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탈원전의 나비효과, 한전 채권의 구축효과

[칼럼] 탈원전의 나비효과, 한전 채권의 구축효과

기사승인 2022. 10. 2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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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논설심의실장)
논설심의실장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축을 해치는 늑대는 없애야 할 대상이었기에 1926년 무렵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지역의 최상위 포식자인 늑대가 완전히 사살됐다고 한다. 그런데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자 예기치 않게도 급격히 수가 증가한 초식동물들이 옐로스톤 지역의 묘목들을 채 자라기도 전에 먹어치우면서 생태계의 균형이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고 한다. 인간 행동의 결과를 모두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마치 늑대의 퇴출이 생태계 파괴를 가져올 줄 몰랐던 것처럼, 탈원전 논란이 한창일 때만 해도 탈원전이 나중에 회사채 시장에 파장을 몰고 올 줄 몰랐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전의 대규모 적자는 탈원전이 그 주요한 원인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데 이로 인한 자금난을 덜기 위해 한전이 올 들어서만 23조원어치의 한전채를 발행해서 시중자금을 싹쓸이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삶에 필수적인 전력을 공급하는 한전이 파산하도록 정부가 내버려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비록 심한 적자 상태라고 하더라도 한전은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 한전은 지난 17일 대규모 적자로 처한 자금난을 덜기 위해 1000억원 규모의 3년 만기 회사채를 연 5.9%로 발행했다. 같은 날 다른 회사들도 1800억원 규모의 2년 만기 회사채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이자율(연 5.75%)로 빌려야 했다.

재정학 교과서에는 '국채의 구축효과'에 대한 설명이 있다. 세금을 징수할 강제권을 가진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는 일반 회사들이 발행하는 회사채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정부가 국채를 더 발행해 소화를 시키려면, 가격을 낮추어야 하고 이는 금리를 더 높이는 셈이 되는데 이로 인해 일반기업들은 회사채를 발행해서 자금을 빌리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런데 투자자들이 한전이 발행한 회사채가 부도가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는 점에서 한전채는 '국채의 구축효과'와 유사한 구축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제는 국채의 추가 발행뿐만 아니라 한전과 같은 공기업들의 회사채 추가 발행에 대해서도 거시경제학자들이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전이 고금리의 우량채권을 발행해서 시중자금을 빌릴수록 일반 회사들은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의 작동원리 가운데 하나는,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자인 회사들 가운데 소비자들의 선택을 많이 받은 기업일수록 더 많은 투자 자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전과 같은 공기업이 회사채시장의 자금을 싹쓸이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압도적으로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최후의 순간에는 정부가 세금을 넣어서라도 파산을 막는 공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은 기업들이 회사채시장에서 고전한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런 상황에서 풀린 뭉칫돈이 부동산에 만들어놓은 거품이 가라앉으면서 부동산 관련 대출의 부실 문제도 나오기 등장하기 시작했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사태도 이런 문제가 앞으로도 벌어질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부실 대출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 대출시장에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게 되고 한전채의 '구축효과'에 더해 회사채 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

정부가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으로 기업의 어려워진 자금조달 문제에 응급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는 한전채의 구축효과를 바로잡는 측면도 있는 필요한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지 말고 정부는 더 근본적인 대응책을 만들고, 정치권은 이것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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