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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빈 칼럼] ‘평화의 값’은 ‘전쟁의 대가’보다 싸다

[홍석빈 칼럼] ‘평화의 값’은 ‘전쟁의 대가’보다 싸다

기사승인 2018. 05. 1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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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빈 우석대 교양대학 교수(정치외교학)
5월 22일 한·미 정상회담,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유럽 냉전의 벽 '동·서독' 통일까지 수많은 고비 극복
남·북·미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 천재일우 기회
홍석빈 교수 최종 증명 사진
홍석빈 우석대 교양대학 교수(정치외교학)
“평화가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평화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과거 미·소 냉전시대에 동방정책(Ostpolitik)을 표방하며 동·서독 간 관계 정상화와 유럽 데탕트의 초석을 놓았던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의 말이다.

1972년 11월 체결된 ‘독일연방공화국(구 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구 동독) 간 기본조약’에 따라 이후 동·서독은 상설 대표부 설치, 점진적 국경 개방, 유엔(UN) 동시 가입 등 관계 정상화의 길로 접어 들었다. 상호 무관세 무역을 통해 경제 통일의 기반도 다져 나갔다. 이후 30년 동안 동·서독 간에는 크고 작은 관계 개선 노력들이 축적되었다. 마침내 1989년 미·소 간 신데탕트를 통해 기회의 창이 열리자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재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같은 냉전의 희생양으로서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이를 지켜봐야 했던 남북한은 독일 통일 이듬해인 1991년 9월 UN에 북한은 160번째, 남한은 161번째 회원국으로 동시 가입했다. 당시 우리 민족에게도 통일이 성큼 다가온 듯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7년이 지난 오늘 한민족은 여전히 냉전의 마지막 동토에 살고 있다.

지난 4·27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한은 물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주변국들에도 세계사적 전환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과거의 종착지이자 새 시대의 출발선이 될 남북한 평화통일은 전 세계 국가들에도 새롭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낙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한다.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에 이르는 길은 지난한 살얼음판이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정교하게 관리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천재일우(千載一遇)다. 불행한 역사의 질곡을 끊고 한민족의 웅비와 세계 평화를 위해 반드시 살려야 할 기회다. 오는 22일 한·미 정상회담, 다음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숨 가쁘게 돌고 있다.

일부에서는 당장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 철길 복원, 상설 연락사무소 설치 등 한껏 기대에 부푼 모습들도 감지된다. 곧장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기대와 현실은 서로 멀다. 아니나 다를까 남북 고위급회담이 연기되었고, 북한 외무성의 북·미 회담 재고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지난한 밀고 당기기가 시작되었음이다.

동·서독 기본조약이 서독 내부 이념대립의 벽을 넘어 서독 연방의회의 비준을 받은 시점은 조약체결 후 6개월이 지나서였다. 그 후 일 년이 지나서야 영국·프랑스 등이 동독과 국교를 맺었고 다시 6개월 후 동·서독이 UN에 가입했다. 미국이 동독과 국교를 맺는 데에는 그로부터 1년 10개월이 더 필요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동·서독은 기본조약 체결 후 상호 상설대표부를 설치했지만 이는 실질적 대사급 관계였을 뿐 공식 국교정상화는 끝내 통일 때까지 이뤄지지 못했다.

복잡한 협상 과정에서 브란트 수상은 동독 호네커 서기장, 미국 포드 대통령, 소련 브레즈네프 서기장, 영국 히스 총리, 프랑스 퐁피두 대통령 등 주변 열강 지도자들과 한편은 흉금 없는 대화로, 다른 한편 강단 있는 승부수로 평화정착의 물꼬를 터나갔다. 물론 에곤 바와 같은 실력 있는 브레인들이 곁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위기가 있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에게 독일의 전철을 답습하란 법은 없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넘어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관련국들 간 국교정상화 등 복잡다기한 정치적 성과가 빠르게 결실을 맺을 수도 있다. 지름길이 있는 데 굳이 돌아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독일 재통일의 경우를 볼 때 역사는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정권이 첫 삽을 뜨게 했고, 결실은 기독교민주연합의 헬무트 콜 정권이 거두게 했다. 간단치 않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전석은커녕 조수석에도 못 앉고 아예 승차도 못할 거라는 우려가 있었던 상황에 비하면 상전벽해다. 초석도 놓고 결실마저 거둘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서두른다고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는 불굴의 의지로 선례를 개척한 선구자들에게 피땀 어린 노력에 합당한 위안을 늘 주었다. 마치 세계 처음으로 비행기를 만들고 대서양을 횡단한 사람들은 기억하지만 그 후 제트 여객기를 만든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평화, 새로운 시작’의 여명을 맞아 초석을 잘 놓고 징검다리를 두드리면서 차곡차곡 성과를 쌓길 바란다. 급기야 분단의 강을 건너 평화와 번영의 땅으로 들어선다면 그 과정에서 수고한 자들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후할 것이다. 닥쳐 올 고비고비마다 기억할 것은 ‘평화의 값은 비싸다. 하지만 전쟁의 대가보다는 싸다’이다. 우리는 68년 전 이미 피와 눈물로 겪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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