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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칼럼] 시진핑의 ‘중국夢’은 실현될 수 있을까?

[강성학 칼럼] 시진핑의 ‘중국夢’은 실현될 수 있을까?

기사승인 2019. 12. 1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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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인터뷰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19세기 중국은 ‘아시아의 병자’(the Sick Man of Asia)로 불렸다. 당시에 오토만(Ottoman) 제국이 ‘유럽의 병자’(the Sick Man of Europe)로 지칭되는 것에 빗대 얻은 치욕적 별명이었다. 중국인들은 19세기를 ‘굴욕의 세기’(the Century of Humiliation)로 간주했다. 1949년 중화인민 공화국을 수립할 때 마오쩌둥은 “중화민족은 일어섰고 굴욕의 시대는 마침내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것은 허풍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공산당 정권은 생존을 위해 미국식 ’자본주의 제국주의‘에 맞선다면서 처음에는 소련에 의존했고, 1969년 동북쪽 국경지대에서 소련과의 군사적 충돌 이후에는 ’사회주의 제국주의의 패권주의‘에 맞선다며 미국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1978년부터는 덩샤오핑의 리더십 하에 바깥세상으로 나와 소위 5000년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기적적인 부국강병정책의 성과로 기존의 유엔 상임이사국 지위와 함께 마침내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유일한 공산제국 국가로서 세계 제2의 강대국으로 누구보다 평등한 국가적 대접을 받게 되었다.

◇강대국간 치열한 투쟁 재발
그러나 이제 우리는 중국이 기존 국제질서의 타파를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강대국들 간 권력과 평화를 위한 치열한 국제 지정학적 투쟁의 재발을 목격하게 되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본성에 입각하여 정치혁명에 관하여 말했듯이, 불평등한 자는 평등을 추구하고 평등한 자는 불평등을 추구한다. 인간의 본성과 함께 국가의 본성을 고려할 때 국가도 개인처럼 불평등한 국가는 평등을 추구하고 평등한 국가는 불평등을 추구한다. 그리하여 중국이 아시아와 전세계를 통틀어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과는 평등을 추구하는 반면에 기타, 특히 상대적으로 작은 주변 국가들과는 불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국제정치의 본질상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이 심하게 앓고 있는 중국몽, 소위 ’미들 킹덤 신드롬‘(the Middle Kingdom Syndrome)은 중국에만 있는 질병이라는 사실이 문제다. 이 말은 중국의 노골적인 국제적 헤게모니의 추구라는 보다 보편적 용어로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중화주의와 다른 것은 작금의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을 넘어 갑자기 21세기 헌신적 마한(Mahan)주의(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국가가 세계적으로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주장) 추종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시진핑이 스스로 소위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급부상하는 신흥강국이 기존의 세력판도를 뒤흔들고 이런 불균형의 해소 과정에서 패권국과 무력충돌하는 경향이 있음을 일컫는 용어)을 경계하면서도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거대한 인근 바다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헤게모니 전면적 도전
중국몽이 꿈꾸는 헤게모니는 알고 보면 짝퉁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식 먼로 독트린‘을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접근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과 아시아에서 독일과 일본이 내세운 지정학 이론을 빼닮았다는 점에서 아주 시대착오적이다. 독일의 히틀러가 건설하고자 했던 ’독일민족의 레벤스라움‘(Lebensraum)(생활권, 원래 서식지를 의미하는 생물학 용어였으나 농경지확보의 필요성을 내세우며 동유럽 방향의 독일의 팽창을 주장하는 민족사회주의의 주요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가 됨)과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구축하려고 했던 ’대동아 공영권‘은 둘 다 영·미식 보편주의(universalism), 또는 작금의 표현으로 전 지구적 보편주의(globalism)에 대한 지역주의적인 정치·경제·군사 전략적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미가 독일이나 일본의 군사력 팽창에 즉각 군사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특히 일본제국이 러시아의 야만적 볼셰비즘(Barbaric Bolshevism)에 대한 방어막이라고 잠시 오해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과거 전체주의 국가들의 이러한 헛된 꿈이 철저히 실패하고 인류에 참혹한 비극을 초래했던 지역적 헤게모니의 지정학 이론을 부활시킨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의 현상타파적인 짝퉁 지정학이론은 오늘날 21세기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셈이다.

◇중국몽은 결국 신기루인가
중국은 비스마르크 후의 독일이 영국과 해군력 경쟁을 했던 것처럼 무제한 해군력의 증강을 꾀하고 일본이 러일전쟁 후부터 일본식 먼로 독트린을 내세워 구축한 ’대동아 공영권‘을 21세기에 중국이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중국의 이런 야심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며 실제로 위협을 주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중국몽이 실현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이 지역에서 전체주의적 공산주의 폭군적 제국의 출현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몽은 궁극적으로 신기루 같은 허풍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20세기에 독일의 제3제국 건설과 일본제국의 대동아 공영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미국, 그리고 미국의 유럽동맹국들과 일본이 이것을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교정책은 ’멋대로‘ 안 된다
시진핑 주도하의 중국몽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의해 군사적으로 빈틈없이 봉쇄될 것이다. 이런 엄연한 국제정치적 현실에서 한국의 대중국정책은 선택과목들 중 하나일 뿐이다. 대학에서 잘못된 선택과목이 장래성 있는 젊은이의 영혼을 파괴하듯 외교정책의 잘못된 선택은 장래성 있는 국가의 영혼을 파괴할 것이다. 신기루 같은 중국몽에 현혹되어 지난 5000년간 단 한순간도 우리 한국을 국가 간 국제법적 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진심으로 존중한 적이 없고 또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동쪽의 야만인‘ 정도로 생각하는 시대착오적 중국과 국가의 진로를 함께하려는 오도된 자발적 기도는 국가적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요컨대, 한국은 중국의 허장성세에 부화뇌동하는 어리석은 국가적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될 일이다. 외교정책적인 과목선택에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미국 같은 초(超)강대국가도 아닌 한국에게 외교정책적인 과목의 선택은 유감스럽게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외교정책이란 주권국가라고 해서 엉성하게 교육받은 정치지도자들이 마치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진흙을 주무르듯 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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