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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칼럼] 21세기의 일본, 어떻게 볼 것인가

[강성학 칼럼] 21세기의 일본, 어떻게 볼 것인가

기사승인 2019. 12. 3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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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1942년 미·일 간 치열한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때, 아직 미국의 승리를 전망하기엔 지나치게 시기상조였던 바로 그때, 미국의 예일대학 교수로서 지정학 이론가인 니콜라스 스파이크먼은 그의 명저 《세계정치 속 미국의 전략: 미국과 힘의 균형》(America's Strategy in World Politics: The United States and the Balance of Power)에서 이 참혹한 전쟁은 결국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전후에 미국은 마치 미국이 영국을 보호해야하듯이 일본을 보호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전후 미국의 최대의 위협은 일본의 부활이 아니라 당시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전을 거듭하던 거인 중국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작금의 미·중 간의 긴장 상황을 고려하면 참으로 놀랍도록 정확한 예상이요, 탁월한 역사적 통찰이 아닐 수 없다. 1945년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망한 후 일본인들은 수세기 동안 인접국들에게 겁주었던 사무라이의 칼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미국은 한국에서 발발한 6·25전쟁을 계기로 세계 공산주의 팽창주의를 목격하자 영국의 경우와는 크게 다르게 실제로 일본의 거의 일방적 보호국이 되었다. 


당시 일본천왕이 항복 선언문에서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고, 또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면서" 일본의 부활을 다짐했던 것처럼 일본인들은 재건에 매진했다. 일본제국이 일으킨 전쟁들의 가장 큰 피해자로서 전쟁 중에 남편을 잃은 수많은 과부들과 아비 없는 자식들 세대가 일본의 경제재건에 묵묵히 나섰다. 그런데 채 5년도 안되어서 일본 경제부활의 절호의 기회는 뜻밖에도, 아주 아이로니컬하게도, 바로 한반도에서 북한의 김일성이 약 3년간의 6·25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찾아왔다. 한국에서의 전쟁수행에 필요한 거의 모든 미국의 전쟁물자 보급기지로 변신하면서 일본은 아주 단시간 내에 경제재건을 이룰 수 있었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후원 하에 세계 공산주의 한국지점장 김일성이 벌인 3년간의 참혹한 한반도 전쟁은 패전국 일본에겐 재건을 위해 신이 내린 축복과 같았다.


그 후에도 줄곧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에 자신의 안전을 전적으로 맡기고 오직 경제성장에만 매진했다. 즉, 강병은 제쳐두고 오로지 부국에만 전념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은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거대한 주식회사'로서 일본 사무라이들은 칼 대신에 서류가방을 들고 전 세계를 누볐다. 그리하여 일본인들은 '경제적 동물'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1970년대 이미 일본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소련공산제국의 몰락으로 미·소 냉전체제가 붕괴되자 미국의 '꼬붕'(주니어 파트너) 노릇에 신물이 난 일본의 소수 애국·민족주의자들이 미국에 NO(아니오) 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잠시 기염을 토하는 듯했으나 그들은 곧 유구무언의 바보들이 되고 말았다. 일본이 홀로는 감당 못할 새로운 위협에 곧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비교적 널리 존중받았다. 미국의 중대한 동맹국이라는 신분과 함께 일본의 풍부한 소위 '연성 힘'(soft power)을 통해 유엔과 그 산하 전문기관들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 막강한 외교력을 행사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은 과거 제국의 무서운 역사적 유산을 갖고 있다. 1945년 미국의 원자탄 두 발에 항복할 때까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자기의 전근대의 스승이었던 중국(청)을 무력으로 굴복시키고, 나폴레옹을 무너뜨린 러시아를 러일전쟁에서 망신시키고, 제1차 대전에서 근대의 스승 국가들인 독일로부터 중국의 산둥반도를 빼앗고, 제2차 대전에서 프랑스의 인도차이나를 무력위협으로 접수하고, 대영제국의 싱가포르를 점령하고 인도를 위협했던 무적의 일본제국이 미국과의 전쟁에서만 유일하게 패했던 생생한 역사로 인해 일본은 누구도 감히 무시하지 못할 잠재적 강대국으로 대우받았다. 오직 한국인들만이 감정적으로 그 사실을 애써 부인해왔다.


그러다가 1998년 북한의 김정일이 일본 열도를 통과하는 미사일을 발사하고 2006년 핵실험을 실시하자 일본은 한때 잠시나마 패닉 상태에 빠졌었다. 게다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과거 '난징학살'의 원한에 사무친 중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해군력 증강에 몰두하고 일본의 생존이 걸려있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새롭게 독점적 권리를 주장하면서 기존의 해양질서에 도전하자 일본은 비로소 미·일동맹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ODA에 기울인 '연성 힘'의 명백한 한계를 깨닫게 되었다. 칼(핵무장)을 차지 않은 사무라이는 아무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본인들이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아베 정권은 핵우산을 위해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일본의 본격적인 강병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제 일본의 외교정책도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미·일동맹 속에 안주하며 소극적이고 피동적이었던 일본의 외교정책이 이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새로운 국제적 상황에서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갑자기 일본에 적대적 자세를 취하는 것은 놀라운 외교적 오류다. 그리고 이것이 반미로 가기 위한 예비단계로 취해지는 반일행위라면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참으로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미-일 동맹은 한국이 결코 '분리하여 지배할 수(Divide and Rule)' 있는 그런 취약한 동맹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한국이 미국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면 미국은 당연히 일본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세계지도에서 서-태평양 지역을 보면 모두에게 자명하다.


아베 일본 총리는 "일본이 돌아왔다(Japan is back)"고 선언했다. 그는 일본인들의 가슴에서 과거 역사적 일본제국주의 비극적 유산인 일종의 '주홍글씨'를 마침내 단호히 떼어버렸다. 이러한 중대한 국제적 변화의 시기에 결코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는 한국의 도덕주의적 대일외교는 자기기만적 행위다. 외교정책은 정치적 열정이 아니라 실질적 이익에 근거해야 한다.


미국의 국부이며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그의 고별사에서 신생 약소국 미국의 국민들에게 경고했다. "습관적 증오심에 입각하거나, 습관적 호감에 입각하여 타국을 대하는 국가는 이미 어느 정도는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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