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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투 유머펀치] 어쩌다 독립운동

[아투 유머펀치] 어쩌다 독립운동

기사승인 2022. 02. 2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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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아투유머펀치
남편은 앞장서가며 ‘둥~둥~둥~’ 북을 치고, 아내는 간장을 실은 낡은 리어카를 끌고 힘겹게 뒤따랐다. 남편은 당당했던 명문가의 후손으로 차마 ‘간장 사이소~!’ 라는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북을 쳤다. 광복 후 경북 안동 시내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천석지기로 수십 명의 노비를 거느리며 관직과 학문이 끊이지 않았던 영남 사대부 집안의 주손(胄孫)이 어쩌다 이지경이 된 것일까.

독립운동 때문이었다. 북 치는 간장 장수의 아버지는 1912년 만주로 망명했다. 전 재산을 털어 석주 이상룡과 일송 김동삼 선생 등이 만주에서 결성한 경학사에 합류하고 한족회에 참여하며 오로지 독립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1920년 신흥무관학교 인근 수수밭에서 일본군에게 무참히 살해되고 만다. 봉오동과 청산리전투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가 자행한 간도 학살(경신대참변)의 희생자가 된 것이었다.

부친의 순국과 함께 명문가의 자취는 이슬처럼 사라졌다. 광복 후 고향에 돌아온 독립운동가의 아들은 거리의 행상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들 또한 택시 운전으로 가난한 살림을 이었다.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고 수군거렸다. 이 기막힌 사연은 당시 안동독립운동관장이었던 안동대 교수에 의해 ‘독립운동으로 쓰러진 한 명가의 슬픈 이야기’란 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민족정기 선양에 앞장서야 할 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주 마지못해 사퇴했다.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사업 수익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무허가 마사지업소를 들락거리는 데 사용했다는 보훈처의 감사 결과 발표에 따른 불명예 퇴진이다. 이보다 더한 블랙 코미디도 없을 것이다. ‘반평생을 친일 청산에 앞장서 왔다’고 강변하는 그는 부모의 독립운동 정황부터가 논란의 대상이었다.

보수정당과 민주당계를 수시로 오간 철새 정치인의 오명 속에서도 내로남불의 언행과 극단적인 반미·종북주의 발언으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토착왜구를 들먹이며 죽창가를 부르자고 했다. ‘친일 미청산은 민족공동체의 모순’이라는 그의 주장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적어도 그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어 보인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광복회의 굴욕에 새삼 안동 간장 장수의 북소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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