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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투 유머펀치] 막걸리의 부활

[아투 유머펀치] 막걸리의 부활

기사승인 2022. 05. 2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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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아투유머펀치
한나절이나 걸어온 오뉴월 땡볕길에 지친 봉이 김선달이 모처럼 한양의 어느 주막집 툇마루에 앉아 땀을 식히는데 목이 몹시도 말랐다. 때마침 주막집 헛간 술독에서 스며나오는 막걸리 냄새가 너무도 구수했다. 노잣돈이 빠듯한 처지라 막걸리 한 사발로 점심을 때울 요량으로 괜스레 술독 주변을 기웃거렸다. 코를 연신 벌름거리며 공짜 술 향기라도 실컷 마시면서 모자랄 취기를 채워보자는 심사였다.

그때 야박하기 그지없는 주모가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손을 내밀며 막걸리 냄새값을 내라고 했다. 비록 시골에서 왔지만 김선달도 그리 호락호락한 선비가 아니었다. 고약한 인심에 마땅히 대응할 전략이 있었던 것이다. 김선달은 빙긋이 웃으며 소매 안의 엽전 꾸러미를 꺼내 쩔렁쩔렁 흔들어 보였다. 막걸리 냄새값으로 치른 엽전 소리였다. 주모는 할 말이 없었다. 체면을 구기고 손님마저 잃어버렸다.

우리 민족에게 막걸리는 술 그 이상이었다. 술이 걸쭉하고 색깔이 탁해서 탁주(濁酒), 빛깔이 희다고 해서 백주(白酒), 농부들이 즐겨 마시던 술이어서 농주(農酒), 큰 바가지에 담아 마시는 술이어서 대포(大匏)라고도 불렀다. 농사일로 허기가 질 때는 막걸리 한 사발이 보약이었다. 모순된 현실에 울분이 쌓인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막걸리는 청춘과 영혼을 달래주는 희뿌연 정화수였다.

막걸리는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인화(人和)의 매개물이기도 했다. 막걸리를 대폿잔으로 돌려 마시는 공음례(共飮禮)에서 비롯된 문화다. 맥주, 소주, 양주에 밀려 한동안 천대를 받던 민족의 술 막걸리가 세계의 술로 부활하고 있다. 한류와 K-Food의 인기에 힘입어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조선의 막사발이 일본의 국보가 되었고 한국의 막춤이 지구촌을 강타하는 시절이 아닌가.

막걸리의 뿌리는 한국이다. 우리의 토박이 문화인 ‘막 문화’가 한류시대와 세계화의 동력이 된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막말을 앞세운 막장정치만 제대로 된 발효과정을 거쳐 농익은 막걸리처럼 거듭난다면, 우리는 명실공히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6·1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판을 보고 술맛이 떨어진다는 유권자들이 많다. 구수한 막걸리 한 잔처럼 서민의 갈증을 풀어주는 평범한 정치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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